1973년도에 본 지리산 공개바위
많은 산악인들이 공개바위를 목표로 등산을 하는 광경이 자주 목격된다. 어제(7월 8일)는 쉬는 토요일이라 운서 앞 에 있는 봇둑에서 투망으로 고기를 잡으려고 집사람과 함께 원기 마을을 지나려는데 원기 앞 공터에 관광버스 한대가 서 있었고 등산복 차림의 몇분이 서로 이야기를 하며 서 있었다.
느낀 바가 있어서 차에서 내려 그중 한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1주일 전에 광주에 산다는 한분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아마도 산악 대장인듯 했다. 공개바위에 대해서 상세한 것을 알아 보려는 의도였다.
함양독바위 주변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봐서 엄천골 지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듯 했다.
공개바위 가까이 까지 관광버스가 갈수 있는냐, 여러 코스중 쉽게 갈수 있는 길, 이웃과 연계된 코스는 어떻게 되느냐등등에 관한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해준적이 있기에 그 팀일거라 짐작을 하면서 등산객에게 말문을 던진 것이다.
내 짐작이 맞았다.
1주일 전에 나에게 상세한 공개바위 정보를 얻어간 그 팀이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방곡까지 가서 공개바위를 답사하고 일행중 일부는 아래로 하산을 했고 대부분의 등산객은 마당재, 베틀재로 해서 함양독바위를 거쳐 운암으로 하산을 하고 있다 했다.
모두들 공개바위에 대해서 감탄을 했다.
" 앞으로 사람들이 많이 끓겠던데요!"
엄천골도 참 많이 변했다. 광주에까지 공개바위의 존재가 알려졌으니 말이다.
지난 겨울방학 전까지는 그저 무덤덤한 뒷동산이었는데 매스컴을 한번 타니 이렇게 사람들로 번잡해진다.
사실 공개바위의 존재는 내가 가장 먼저 찾아낸 것은 아니다. 옛날부터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엄천골 사람들은 거의 모두 공개바위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그냥 흔한 바위로만 여겼을 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차이 뿐이다.
공개바위와 관련한 일기장 기록이 있어서 원본 그대로 나열을 해 본다.
(1973년 8월 16일 목요일 날씨 흐림)
라디오에서 태풍이 몰려와 오늘 오후에나 저녁 때 비가 많이 올 것이라 예보를 했다.
한쟁이골에 문종이를 만들 때 반드시 필요로 하는 베개꼴(물춤)을 베러 가자고 어머니께서 제안하셨다.
어머니의 이런 말씀은 곧 명령이다. 아랫집의 해철이네 아버지께서도 함께 가신다고 했지만 구지르하게 흐린 날씨 때문인지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께서는 한마디를 던지셨다. 깊은 산에 갈 때는 항상 기쁜 마음으로 정신을 깨끗이 해서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 산엘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내키지 않는 마음을 돌이키기가 몹시 어렸웠다. 시커먼 구름이 자꾸 서쪽으로 몰려 갔다. 비가 올 징조인 것이다.
결국 어머니의 명령에 난 복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을을 벗어나 수듬판으로 접어들자 아까의 꽤죄죄한 기분은 싹 가셔 버렸다. 산 등성이에서 아래로 불어 오는 골 바람이 아주 시원했고 기분까지 상쾌해졌다.
뒷골의 산 등성이에 올라서자 좀 전의 산들바람은 강풍으로 변했다. 걸음조차 내디디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앞 뒤에 비춰지는 시야가 아주 시원했다. 멀리 왕산과 엄천강이 한눈에 들어 왔기 때문에 아주 멋져 보였다.
일행은 4명이다. 해철이 엄마 아빠 그리고 우리 식구다.
이곳까지는 두번째이다. 어렸을 때에 탄피를 줏으로 한번 와 봤고 베개 꼴을 베러 온 것이 두번째인 셈이다.
보통의 산이거니 하고 생각하고 왔지만 억새풀과 칡덩굴, 온갖 잡초들이 길을 막고 있고 그 잡초들은 모두 내키보다 컸다.
길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발만 짐작으로 내 디디면서 걸었다. 숨을 헐떡이며 또하나의 산 등성이에 닿았다. 이곳이 헬리콥터 비행장이라 했다. 가운데에 돌을 박아 놓았는데 비행장의 표시인것 같았다.
우리집 마당만한 넓이였다.
그곳에서부터 능선을 타고 제법 가니 능선 아래에 공개바위가 보였다.
아름드리 큰 돌 다섯개가 일직선으로 쌓여 있다. 바위 옆으로 잡초덩굴들이 공개바위를 타 오르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천태산 마고 할멈이 공개놀이를 하다가 이곳에 쌓아 놓았다는 것인데 사실적인 측면에서는 그것은 전설일 뿐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건 그렇고 누군가가 이곳에 기념으로 쌓아 놓았던지 아니면 무슨 신앙 때문에 그랬는지 좀 연구를 해 봤으면 좋겠는데 높이는 한 10m 정도이다. 연구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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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바위 관련 일기장 기록은 여기까지이다.
지금은 방송을 타고, 신문에 소개가 되고 인터넷에 사진자료와 전설을 올리고 해서 전국에 소문이 났지만 당시에는 그냥 지리산에 있는 바위정도로 인식을 했다.
아직도 지리산 구석구석에 묻혀 있는 기이한 진실들이 참 많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