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억이야기

가을 남자

배꼽마당 2012. 11. 8. 14:20

가을 남자

 

2006년 10월 10일 오후 7:59

 

1975년 9월 4일 목요일 비

바람이 그것도 제법 찬 바람이 불어대면 강렬한 가을의 이미지가 물씬 코를 찌른다.

고향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이 때쯤이면 가을의 맛을 함께 느끼며 향수라는 것이 물씬 되살아나기도 한다.

난 가을이 참 좋다. 가을엔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서정적이면서 가을의 향기를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이기 때문에 낙엽이 이리저리 뒹구는 가을이란 계절을 참 좋아한다.

풍성한 오곡백과가 추수를 기다리고 내가 좋아하는 가을의 과일들이 참 많아서 가을에 대한 미련이 많기도 했다.

고추잠자리가 헝클어져 있는 마당의 한 구석의 두엄 자리위에서 뱅글거릴 때 괜히 서글퍼지며 고독해지는 감정이 참 많이 느껴지기도 했다.

가냘픈 몸매를 하고서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노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빨강, 분홍의 색색으로 단장을 하면서 꽃잎이 수줍게 미소를 지으면서 아침 이슬을 머금은 그 모습이 참 좋기만 하다. 난 그 코스모스를 언젠가 부터 참 멋진 꽃이라 생각해 왔다.

마을 뒤에 있는 정자나무 아래를 가 보노라면 가을엔 낙엽이 떨어질 것이다.

그 정자나무엔 칡 덩굴과 햇 짚으로 엮어서 매어 놓은 그네줄이 있어야 난 가을을 많이 느낀다.

추석때면 동네 아이들과 함께 그네줄을 만들어 놀이 공간을 참 많이 만들기도 했다.

고전적인 맛이 풍겨나고 사람들이 와글거리면서 예쁜 옷으로 단장을 한 아이들이 몰려드는 그런 그네의 묘미가 있었기에 난 그런 그네를 이 가을엔 또 그리워 한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아름답고 한없이 서글퍼지는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하며 사색에 잠길 고민을 해 보는 것이다.

나무숲이 우거진 그 사이로 곱게곱게 사뿐 내려 앉은 단풍잎을 밟으며 가을을 듬뿍 느끼는 재미를 생각해 보는것도 이 가을에만 소유할 수 있는 멋이다.

고향의 가을은 작년 설악산으로 수학 여행을 가서 본 화려한 색깔의 단풍이 드는 가을과는 초라한 곳이다. 그냥 수수한 나무잎들이 만들어 내는 단풍의 색들이 오히려 멋들어지게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이 소유할수 있다는 고향의 가을 색이기 때문에 더 정이 가는 모습이라서 좋다.

우리집 뒤의 오솔길로 올라가 보면 가는 억새풀하고 억새꽃이 나풀거릴 것이다. 억새꽆잎과 많이 닮은 도꼬마리 꽃 잎도 함께 나풀거릴 것이다.

고구마 밭 이랑 바깥에 낮게 서 있는 감나무엔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밭 이랑 사이사이엔 닥나무 잎사귀들도 가을을 노래하고 있을 것이다. 난 이런 가을을 사랑한다. 무엇보다도 고향의 가을을.


( 1975년 9월의 제 일기장 한페이지를 공개해 봅니다. 1975년엔 제가 고 3이기도 했고 다른 곳에서 고향의 가을을 생각하며 쓴 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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