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억이야기

독거미

배꼽마당 2012. 11. 8. 14:18

독거미

 

2006년 12월 12일 오후 9:49

 

2000년도엔 마천초등과 서울의 한 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었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될 무렵 서울의 자매 결연을 맺은 초등학교 학생 100여명을 초대하여 연합 야영활동과 함께 농촌 체험 활동의 프로그램에 따라 1박 2일간의 체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감자 캐기 체험, 옥수수 삶아 먹기, 백무동에서 내려오는 개울에서 물놀이 체험, 백무동을 거쳐 첫나들이 폭포까지 산악 체험 및 눈을 가리고 노끈을 잡고 가게 하는 잠행활동, 저녁엔 연합 캠파이어등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계획대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서울의 아이들은 시골의 분위기를 참 좋아 했다. 백무동 계곡의 숲속에서 울어 대는 매미소리에도 신기해했고, 첫나들이 폭포에서 미역을 감는 그 자체에 아주 좋아라 했다.

마천 아이들과 서울의 아이들은 금세 친구가 되어 첫나들이 폭포까지 오르는 동안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난 서울의 한 아이에게 진한 추억을 안겨 주기로 작정했다.

" 이 산이 무슨 산인지 아니?"

" 설악산 아니예요?"

무심코 던진 말에 그 아이도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 설악산은 강원도에 있잖아!"

" 아 맞다! 지리산! 맞지요? "

" 그래 정답이다! "

그렇게 묻고 답하기로 시작을 하여 곧 본론으로 전개를 하기 위한 준비단계의 도입 작전이었다.

“ 이 지리산엔 독충이 많은데 특히 독사나 독거미를 조심하거래이!”

“ ? "

" 2주일 전 등산객 한 사람이 산을 오르다가 독거미에 물려 중태에 빠졌다는 뉴스를 MBC 저녁 9시 뉴스에 보도 된 것을 안 보았니?“

“ ? ”

나와 함께 백무동을 거쳐 첫나들이 폭포로 오르던 중 은밀하게 중얼거리듯 뇌까린 말이었다. 자연스럽게 던져 댄 말에 5학년 남학생은 소름이 돋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우리 나라에선 아직까지 독거미라는 존재가 학계에 보고 된적이 없으며 특히 지리산에 독거미의 존재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럴싸하게 연출해 낸 분위기에 쉽게 말려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물론 며칠 전 저녁 뉴스에 등산객이 독거미에 물려버렸다는 것도 긴장감을 더하기 위한 연출이었을 뿐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이었다.

TV에서 자주 보았던 동물의 왕국이나 곤충의 세계를 자주 접했을 서울 아이라고 생각해 지라 쉽게 분위기에 말려 들 것이란 기대감에서 연출해 낸 것이었다.

산을 오르는 길옆에서 강아지 풀 하나를 뽑았다. 서울의 한 아이에게 진한 장난을 칠 멋진 도구였다. 백무동 계곡의 음산한 분위기에 도취되어 무심코 산을 오르는 그 아이의 뒤로 바짝 붙어선 강아지풀을 가지고 목덜미 부분과 귓 살에 사알살 문질렀다.

그 아이는 목덜미에 붙은 파리라도 쫓는 양 손으로 목 부분을 연거푸 털어 냈다.

또다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강아지풀로 간질렀다.
역시 그 아이의 손은 목 부분의 귀찮은 파리를 자꾸 쫓아 댔다. 무심코 하는 동작이었지만 모두 각본에 있는 전개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 이 지리산에서는 특히 독거미를 조심해야 하는데....... ”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함께 첫나들이 폭포를 향해 산을 오르는 서울의 아이들을 걱정하는 듯한 독백을 한 아이의 귀에만 들리도록 초점을 맞춰 제법 그럴싸하게 던져 댄 말이었다.
또 조금 뒤 쳐져서 강아지 풀을 그 아이의 목덜미에 대고 살금 간질러 댔다.

“ 어 ? ”

이번에 서울의 아이는 신음을 하듯 가던 걸음을 멈칫하면서 긴장을 하는 듯 했다.
그도 그럴것이 시골의 자매 결연을 맺은 학교 선생님이 안내를 하고 있고 그 지역의 실정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이 그렇게나 안전 문제에 대해서 걱정을 하는 지리산 독거미 문제가 바로 자신의 현재의 문제라고 인식을 한 듯 했다.

그 순간을 놓칠리 만무했다.

“ 어이쿠 이거 큰일 났네! ”

서울 아이는 갑자기 뻣뻣한 전봇대가 되어 버렸다. 꿈적도 하지 않은 것이다.

“ 선생님 내 목에 뭐가 붙었어요? ”

“ 잠깐 가만히 있거래이. 내가 좀 전에 걱정했던 지리산 독거미가 지금 네 목에 기어다니고 있구나!”

더 호들갑을 떨며 심각한 걱정을 하는듯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라는 종용을 했다.

“ 독사와 벌, 독거미는 자기를 공격하거나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 물거나 쏘지 않거던. 현재의 상태로 가만히 있어. 그러다가 독거미가 살그머니 다른 곳으로 가 버리게 말이야.”

“ 어 좀 떼 내어 주세요. ”

아주 애절한 목소리였다.

“ 그대로 가만히 있거라. 저절로 도망을 가 버리게 말이야. ”

웃음이 튀어나오는 것을 꾹 참고 아주 태연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던졌다.

강아지 풀을 한동안 간질러 대다가 강아지 풀을 귓 살과 어깨 사이에 살짝 걸쳐 두었다. 강아지 풀은 그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함께 움직거렸다.

아주 부드럽게 말이다. 그 느낌은 벌레가 아주 알맞게 기어 다니고 있는 그 감각이라는 것을 잘 아는 터라 그대로 두고 저만치 나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 아이는 그대로 꿈쩍도 하지 않고 두 손을 약간 벌린 채 굳어 버린 자세로 서 있기만 했다. 저만치서 뒤 따라 오던 서울의 친구들이 그 아이의 기괴한 동작과 함께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매우 의아해 했다.

“ 너 지금 왜 그러니? ”

“ 야 임마 말하지 말고 가 버려. ”

양 손을 약간 벌린 채로 얼굴만 찡그리고 울상을 짓는 그 표정이 이상한 듯 연달아 따라 오르던 다른 여학생들마져 그 아이의 기괴한 모습에 이유를 모른 채 요모조모를 관찰하다가 산을 오르고 또 다른 친구들이 오르다가 그 아이의 모습을 보고

“ 넌 안 올라가고 왜 그렇게 서 있냐?”

가관이었다. 더 두었다가는 문제가 야기될 듯하여 그를 독거미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야 했다. 다시 내려가 그 아이의 목덜미에 얹혀져 있는 강아지풀을 떨어뜨려다.

“ 이제 독거미가 도망을 간 모양이다. 괜찮아.”

“ 진짜 독거미가 도망을 갔어요? ”

“ 그렇대두 ”

땀을 뻘뻘 흘리며 태양이 작열하는 지리산의 등산길 어귀에서 그 아이는 독거미의 공포에서 비로소 해방이 된 것이다.

“ 사실 그 독거미는 이 강아지 풀이었어. ”

“ 예에 ~ ! ”

강아지 풀에 완전히 속아버린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아니면 점잖은 척 하면서 자신에게 장난을 친 나를 원망하듯 등을 밀쳐댔다.

“ 아이 선생님 너무 심했잖아요! ”

“ 히히, 네가 지리산 탐방을 처음 한 강한 추억을 남겨 줄려고 그랬는데, 하하하 ”
그와 난 백무동의 계곡에서 한참이나 웃어댔다. 다른 아이들은 두 사람이 웃는 연유를 모르고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 아이는 내려 올 때도 다른 친구들에게 나를 보고 ‘독거미 선생님’이라며 계속 장난을 걸어 왔다. 저녁에 야영을 할 때도, 잠행 활동을 할 때도 그 아이는 내 주변만 자꾸 맴돌기를 여러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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