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꽃
1973년 8월 18일 토요일 흐림
우리집에는 창호지 생산을 많이 한다. 물을 뺀 창호지 한장 한장을 잘 벗겨 건조기에 붙일 때 사용하는 빗자루는 일반 빗자루로는 되지 않고 부드러운 갈대 꽃으로 만든 빗자루가 필요하다.
겨울에 또 창호지를 건조시키기 위한 재료로 갈대꽃이 필요한데 그 갈대꽃을 뽑으러 간다.
갈대꽃을 우리 동네 사람들은 우동대라 했다. 너무 많이 피어 팬 것은 빗자루로 만들어도 사용하질 못한다. 알맞게 핀 것만 뽑아야 했다.
그저께 갈대꽃을 뽑아 온것이 양이 적어 오늘 또 가야 한겨울 내내 필요한 빗자루 재료를 준비해야만 했다. 그저께도 가본 길이건만 산을 오르는 내내 숨이 찼다. 빨리 걷지 못하겠다.
자주 가 보는 산길은 아니었지만 그저께 가 본 길이었기에 신비함이 적은 탓인자 산길은 이미 헌 길이 되어 있었다.
오늘은 뒷골에 가면 산복숭아를 많이 사먹으리라 다짐을 하고 용돈을 주머니에 조금 넣고 갔다.
수듬판을 지나고 애악골로 올라 한참을 가서 산등성이에 다달을 수 있었다. 바람 한점 없었다. 방곡 마을 뒷산 저편에는 염소떼가 풀을 뜯고 있었다.
이런 깊은 산중에 누군가가 염소떼를 기르는가 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이디어 한번 잘 썼다고 느껴졌다.
그저께 가는 길로 가다가 방향을 틀었다. 한번 갈대꽃을 뽑은 곳엔 더 이상 갈대꽃이 없기에 다른 쪽 계곡으로 가서 갈대꽃을 뽑기 위해서다. 뒷골 대밭이 있는 곳에는 한적한 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옛날에는 그 집에 화전민이 살고 있는 집이었는데 낯 모르는 청년 3명이 살고 있었다. 도시에서 온 사람 같은데 농사꾼 같지는 않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 같았다.
" 복숭아 좀 파세요!"
가느다란 목소리로 청년에게 말을 건넸지만 대꾸는 시원하지 않았다. 팔게 없다 했다. 대신 두개 그냥 따서 가져 가란다. 개울가에 가서 깨끗하게 씻어서 복숭아를 먹는데 가까운 거리의 나무 가지에서 엄청 크고 시커먼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매달려 있었다. 내가 여태까지 본 것 중 가장 큰 거미였다. 아마 독거리일거라 생각했다.
풀 숲 사이로 헤쳐 가며 갈대꽃을 뽑아야 하는데 엄청 큰 거미를 보고 나니 일할 맛이 나질 않았다.
' 혹시 독사라도 나와 발을 콱 물어 버리면 어떡하지!'
무서워졌다.
나무 그늘에 앉았다. 해철이네 엄마께서도 자리를 함께 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밥을 먹기 전에 먼저 미수가루를 타 먹었다. 산 속의 개울물에다가 미수가루를 타서 시원하게 갈증을 해결 했다.
더운 여름날 한창 일을 하다가 미수가루 한잔이 더할수 없이 시원했다.
역시 산은 좋은 곳인가 보다. 산에서 태어나고 산에서 자랐어도 역시 산은 좋기만 하다.
오후 나절 내내 갈대 꽃 한짐을 장만 했다. 애악골로 내려오는 동안 어깨가 몹시 아파 왔다. 엄청 무거운 갈대꽃을 지고 내려 와야 했기 때문이다. 조금 가다가 쉬고 조금 가다가 쉬고 했는데 좁고 가파른 산길은 멀기만 했다.
* 지금부터 34년전의 어느 여름날에 쓴 일기의 한 페이지이다. 갈대꽃의 쓰임새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요즘에는 지천으로 피는 것이 갈대 꽃이지만 당시에는 소 먹이용으로 베어 버리거나 가까운 곳엔 소들이 갈대 잎을 먹어 버리기 때문에 깊은 산골까지 가야만 구할 수 있었고 이 갈대꽃을 구하기 위해 요즘 한창 세인들에게 알려진 지리산 공개바위 바로 아래까지 갔었던 날의 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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