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억이야기

고향에 가을이 오면

배꼽마당 2012. 11. 8. 13:57

고향에 가을이 오면

 

2007년 8월 7일 오후 10:39

 

1974년 8월 31일 토요일

고향에 가을이 오면 난 그때를 참 좋아한다.
가을이란 계절 자체가 익는 계절이니 모든 곡식과 과일들이 알알이 익어가기에 사람들의 마음도 푸른빛깔과 함께 어느새 동화되어 가는 것이다.

가을을 가장 먼저 감상할 수 있는 곳은 벼 이삭이 고개를 치켜들고 세상 구경을 하려고 할 때다. 아침 나절에 안개가 막 겆힐려고 할 때 벼 이삭 사이사이에 옥색 구슬의 이슬 방울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그곳에 햇빛이 비치면 금방 은구슬이 되어 짙은 광채를 뱉아 낸다.

고향집 지붕 위에는 하얀 박들이 둥글둥글 얹혀있다가 아늑한 초가집의 짚속으로 힘을 주어 자리잡을 때의 모습은 고향의 가을이 아니라 한국의 서정적인 풍경일 것이다.

이런 모습은 구경하기가 어렵다. 초가집이 없어졌으니까 말이다.

한여름의 장마비에 시달려 온 돌담장에 파란 이끼가 자란 그 파르스름한 색이 참 좋다. 은은하면서도 고향의 색이기 때문이다. 이에 맞장구를 치면서 담장 옆에 서 있는 거구의 감나무가 감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자랑을 할 것이다. 이때에는 가을 하늘엔 고추잠자리가 참 많이 날아 다닐 것이다.
고추잠자리는 가을의 공간을 참으로 예쁘게 만들어 나간다.

길가에 알맞게 자리를 잡고서 꽃을 피워대는 코스모스가 또 가을을 예쁘게 만들어 간다. 고추잠자리와 함께 산들 바람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는 가을의 분위기를 한층 짙게 해주기도 한다.
코스모스란 놈은 원래 외국품종이지만 이제는 한국의 토종보다 오히려 더 한국을 사랑하는 꽃이 되어 버린것 같다.

고추들이 빨갛게 익어 갈 무렵 순박한 시골 처녀가 주인이 되어 자기를 따 주기를 바랄 것이다.
초가을의 맛은 무엇보다도 둥그런 보름달 아래에서 달빛을 먹어대며, 그것도 고향의 부뚜막에서 귀뚜라미가 울어대야 진짜 가을의 향기가 퍼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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