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쟁이 골
1973년 8월 16일 목요일 흐림
라디오에서 태풍이 밀려와 오늘 오후에나 저녁 무렵에 비가 내릴 거란 예보를 했다. 한쟁이골에 물춤(베개꼴)을 베러 가자시는 어머니의 명령이 떨어졌다.
아랫집의 해철이네 아버지께서도 함께 가신다고 했지만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토속 신앙 하나를 믿고 계셨다. 깊은 산에 갈 때는 기분 좋은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서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 가야한다고 한다하셨다.
그런데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항상 어머니께서는 힘든일을 무조건 명령으로 일관하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필 태풍이 불어 온다는 날 깊은 산으로 베개꼴을 하러 가야 한다는게 마음이 걸렸던 것이다.
구름이 자꾸 서쪽으로 올라 갔다. 비가 올 징조처럼 보였다. 어머니의 강한 고집은 막무가내셨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명령에 굴복을 해야만 했던게 상례였기 때문에 지게를 지고 산엘 오를수 밖에 없었다.
산골짜기에서부터 바람이 쏴하게 불어 왔다. 조금전의 찌부등 하던 기분은 싹 가셔 버렸다. 오히려 상쾌한 기분었다. 뒷골 산등성이까지 올라서자 산들바람이 강풍으로 변했다. 걸음을 잘 걷지 못할 지경이었다. 길옆의 억새가 바람에 쉼없이 흔들렸다.
그래도 시야가 훤해서 좋았다. 산엘 오르는 사람은 4명이었다. 해철이네 엄마와 아빠, 어머니와 나이다. 어렸을적에 이곳까지 탄피를 줏으로 왔던 곳이다. 엿을 사먹겠다고 그 먼길 산길로 탄피를 줏으로 왔던 기억이 새삼스러워졌다.
평범한 산이거니 하고 왔지만 억새풀과 칡덩굴이 뒤 엉켜 엉망이었다. 다른 잡초와 함께 내 키를 넘는 것들 뿐이었다. 잡초가 가려 버린길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발만 짐작으로 내 디디면서 걸어갈 뿐이었다.
다음 산능선까지 갔다. 헬리콥터 비행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집 마당만한 넓이의 헬리콥터 비행장이었다. 저만치 가니 지리산 공개바위의 모습이 보였다. 우람한 바위 다섯개가 일직선으로 쌓여져 있었다.
바위 옆으로 잡초와 칡넝쿨들이 타고 오르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천태산 마고할미가 공기놀이를 하다고 저곳에 쌓아 놓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전설일 뿐이다. 어떤 기념물이던지 아니면 신앙적인 요소일거라 생각을 해 보았다. 어쨌거나 연구를 해 보아야 할 공개바위이다. 엄청 높았다.
한쟁이골로 내려가서 베개꼴 한짐을 해서 무겁게 낑낑거리며 하루 일과를 마쳤다. 비는 종일 내리지는 않았다.
* 1973년도의 일기장을 펼쳐 보았다. 34년전의 여름은 어떠했을까 생각하면서 일기장을 펼쳐 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베개꼴은 창호지를 만들때 베개처럼 긴 풀을 잘게 찢어서 가로로 놓게 하여 젖은 창호지를 막대기에 붙이기 좋게 하기 위한 창호지 만드는 재료로 쓰이는 것이다.
물을 흠뻑 먹은 풀을 한짐 지고 먼 산길로 지고 내려 오기에는 참 힘든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풀을 여름철에 장만해 놓아야 겨울에 창호지를 만들 수 있으니까 우리집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어서 힘들었지만 해야만 했던게 당시의 일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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