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이야기

지리산 중턱에 있는 마을

배꼽마당 2012. 11. 9. 15:25

지리산 중턱에 있는 마을

 

 

2007년 9월 7일 오전 10:40

지리산을 이야기 하자면 먼저 어느곳의 지리산에 관해서인가를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지리산 하면 전남 구례, 전북 남원, 경남의 하동, 산청, 함양을 끼고 있는 산이며 같은 지리산 아래이지만 사실 문화나 풍습, 심지어 말씨나 억양까지 다르다.

그만큼 같은 지리산 아래여도 각기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게 지리산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지리산이 워낙 방대하고 광활하기 때문이기도 하며 수없이 많은 산줄기와 고개가 사람들간의 소통을 원활히 하지 못한 탓에 기인된 것이다.

지리산 중에서도 지리산의 동부자락에 대해서는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왔으며 내면적인것까지 경험하였기에 동부자락의 문화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를 해 본다. 바로 고향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그냥 예사로운 것으로 인지되어온 것들이 세월이 지난 지금에 어느 사실 하나를 인식해 보면 새삼스럽게 신기해지는 것이 많은데 그중의 하나가 지리산 중턱에 있는 마을에 관한 것이다.
등산복을 입고 산엘 오르기도 힘든 곳에 옛날엔 큰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산 중턱에 있는 마을중 지금까지 존재하는 마을과 사라져 버린 마을을 언급해 본다면 현존하는 마을은 산청군 금서면 자혜리 쌍재마을과 묵은터, 가현마을이 그것이다.

( 왕산 중턱에 있는 마을 쌍재, 공수님네 집 전경)


쌍재마을은 산청군 왕산 중턱 해발 약 700m상에 위치한 고지대 마을이며 60년대까지 수십가구가 존재했던 큰 마을인데 이농으로 인하여 급격하게 작아져 버렸고 몇년전까지 한가구도 없어져 버린 마을이었지만 쌍재를 고향으로 둔 공수네 식구들이 귀농을 하여 선산을 가꾸며 새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쌍재에서 방곡마을쪽으로 고개 하나를 넘으면 가현마을이 나온다.

이 가현마을은 1951년 6.25 전쟁중 지리산 오지마을의 대명사로 통했고 그런 연유로 빨치산의 아지터로 치부되었으며 마을 사람 전부가 빨치산과 내통을 하는 통비분자로 낙인이 되어 전 마을 사람들이 학살되는 비운의 마을이다.

거창 신원 사건을 자행한 바로 그 부대에 의해 가장 먼저 우리편에 의해 학살을 당한 시효가 된 마을이 바로 가현 마을이다. 그런 아픔을 간직한 마을이지만 그 이후에 제법 큰 마을로 재 형성되다가 역시 70년대 이후 이농현상으로 급격한 인구의 감소를 가져왔고 나중엔 한가구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최근에 웰빙문화를 타고 도시에서 귀농을 한 세대가 많아 이제는 세련되고 현대화된 집이 빽빽히 들어선 큰 마을로 되어 버렸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산청군 금서면 가현마을, 가현마을 맨윗집, 인천에서 귀농을 하신분의 집이다)




이 가현마을에서 보면 지리산 공개바위의 높이와 비슷하며 가현 마을의 가장 윗집에서 쌍안경으로 보면 공개바위가 뚜렷하게 보인단다. 인천에서 살다가 귀농을 한 주인장의 말에 의하면 말이다.

또 상상을 초월하게 고 지대에 들어선 마을이 바로 오봉 마을이다.


(산청군 오봉마을,http://blog.naver.com/29daffodil/140014317813, 지우개님의 사진)


요즘엔 포장된 새마을 도로가 나 있어서 차량을 이용하면 수분만에 오봉마을에 도착을 할 수 있으나 70년대말까지만 해도 오봉 마을을 가자면 엄청 힘이 들었으며 완벽한 준비를 하여 마치 지리산 천왕봉 등정을 할때처럼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서 오봉 마을을 가야만 했으며 사실 당시엔 거의 왕래가 단절된 곳이었다. 그만큼 오지 마을의 대명사가 오봉 마을이었던 것이다.

지리산 중턱에 있던 마을이었지만 완전히 사라져 버린 마을이 몇 곳이 있는데 바로 모래골과 후동마을이다. 모래골 마을은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에 있으며 해발 700m 고지대에 있던 마을이다. 지금도 그곳을 등산 하려면 가파른 길 때문에 엄청 힘이 드는 곳이다. 그곳은 바로 공개바위 가는 길목인데 후동 마을은 공개바위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이며 이곳 역시 해발 700m 정도 되는 고지대의 마을이었다. 공개바위쪽으로 산을 오르다 보면 집터였던 곳에 감나무와 뽕나무, 대나무가 엉성엉성 있는곳이 바로 그곳이다. 당시에는 수십 가구가 형성되어 있어서 큰 마을이었으며 독창적인 문화와 식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다는게 어머니의 이야기로 유추를 할 뿐이다.

지리산 중턱에 있던 마을중 사라져 버린 마을인 노장동 마을이 있었다. 노장동 마을의 위치는 함양군 휴천면 운서리 뒷쪽 해발 800m 고 지대에 있었던 마을인데 바로 함양독바위 아래에 있던 마을이다. 지금은 인기 등산로이며 주변엔 당시의 마을이었다는 흔적들이 즐비하다.

또하나 고지대의 마을로는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뒷골이다. 뒷골에는 현재 귀농을 한 여러 세대개 듬성듬성 집을 짓고서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어 가는 곳으로 70년대 중반까지 몇 가구가 살고 있는 것을 내가 직접 목격한 곳인데 나중엔 전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지만 IMF사태 이후 새롭게 각광을 받고 주목이 된 곳이 뒷골이다.

새롭게 마을이 형성되고 도로가 만들어짐으로 해서 지리산 언저리에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것은 분명하다.
바로 엄천골의 새로운 문화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