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이야기

잊혀진 여름철의 지리산의 맛

배꼽마당 2012. 11. 9. 15:21

잊혀진 여름철의 지리산의 맛

 

2007년 8월 8일 오후 8:52

지리산 아래의 엄천골에서 여름철의 먹거리가 생각이 난다.

음력 유월 유두날이 되면 어머니께서는 빵을 쪄서 논두렁까지 가지고 가서는 막대기에 꽂아 놓곤 했다. 유두날의 엄천골의 풍습이었다. 아마 한 해 농사가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풍습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유두날이 참 많이기다려졌다.
밀가루 반죽을 할 때 막걸리를 약간 붓고는 그 곳에 사카린 녹인 물을 넣으면 빵이 잘 부풀어 오르고 달착지근했다. 가마솥 위에다가 싸리 나무로 만든 채반을 걸쳐서 그 채반 위에 다시 삼베로 만든 보자기를 씌우고 밀가루 반죽을 한 것을 알맞게 펴 놓는다. 그런 다음 밀가루 반죽 위에 팥이나 완두콩 삶은 것을 골고루 뿌려 놓고 푹 찌면 맛있는 빵이 되어졌다. 갖 쪄 낸 /빵은 약간 부풀어 올라 먹기에 부드러웠으며 설탕이 귀했을 당시에 단맛을 내는 조미료는 삭카린이었기에 그 삭카린에 대한 맹신은 당시엔 절대적이기도 했다.

잊혀진 맛의 향수다. 카스테라나 햄버그등 인스탄트 음식에 밀려 이제는 거의 잊혀진 어머니의 손맛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유두날 뿐 아니라 요즘처럼 궂은 날씨가 되면 집집마다 일을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고 그럴 때면 어머니께서는 빵이나 연한 박잎이나 들깨 잎으로 만든 부침개를 만들어 주셨다.
후라이 팬이 없을 때니까 솥의 뚜껑을 이용하여 불을 때어서 만드는 부침개였다. 부침개를 만들 때 요즘에 많이 이용되는 식용유 대신 들기름을 사용한 탓에 구수한 냄새가 온 마을을 진동하게 하였다.

 


                               


당시에는 먹는 것이라고는 밥이 거의 전부였고 특이한 행사 때 간식거리를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 입이 궁금해 했으며 시장한 상황에서 별것도 아닌 것이 참 맛이 있었다.
부침개의 재료는 요즘에 많이 나오는 애호박, 들깨 잎, 박 잎, 감자였다.

또 하나 잊혀진 먹거리 중의 하나는 볶은 밀이었다. 외국산 밀가루에 밀려 우리네 들판에서 우리 밀을 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제성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보리와 밀을 거의 반반 정도 심어졌고 정미소에 가면 밀가루를 빻아주는 기계도 있었으며 그 밀가루를 이용하여 수제비, 국수, 칼국수, 각종 부침개의 원료, 빵의 원료로 이용되었다.
여름철의 별미는 수제비였는데 우리밀가루로 만든 수제비 역시 참 맛이 있었다.
당시에 여름철에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집은 부자집 뿐이었다. 대부분의 집에서는 보리밥이 주식이었고 하얀 쌀이 한줌 들어간 부분은 아버지의 밥그릇에만 올려졌고 나머지 밥그릇에는 쌀알을 구경하기가 참 힘이 들었다.

보리쌀로 밥을 할 때는 밥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오후 나절에 보리쌀을 삶고 식혀 두었다가 다시 그것으로 밥을 지었다. 그런 보리밥은 건강에는 좋았는가 모르지만 입속에 들어가면 거칠어 보리밥에 질려버린 사람은 나만의 기억이 아닐 것이다.
가끔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는 수제비에 흥미가 많았던 이유는 수제비 자체의 맛 보다는 거칠은 보리밥의 감촉에 질려 버린 역 반향적인 심리였으리라.

수제비속에 들어간 감자가 어느정도 으깨져 얼큰한 맛이 감둘기도 했는데 뜨거운 것을 싫어 하신 어머니께서는 잘 끓인 수제비를 큰 양푼에 담아 집 앞의 샘물에 식혀 오곤 하셨다. 배가 출촐했던 나는 그동안의 위 준비를 하고 있었고 수제비 한 그릇에도 많이 감동을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는다.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오면 창고에 저장해 둔 감자가 썩는 것이 많았다. 그것을 그대로 두면 계속 감자가 썪기 때문에 요즘처럼 습기가 많은 때 어머니께서 썩은 감자를 분리해 내셨다. 썩은 감자는 그대로 버리는 게 아니고 그것들만 모아서는 옹기그릇에 담아서는 물을 함께 부어 두고 오랫동안 샘물가에 보관해 두었다.
그릇속의 감자를 으깨어 체에 걸러내어서 다시 그것을 밀가루와 반죽을 하여 빵처럼 쪄서 간식거리로 만들었는데 썩은 감자로 만든 감자떡은 맛이 아주 독특했다.

그것을 먹고 배탈이 난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건강에 문제는 되지 않았다. 삭혀서 즐겨 먹는 홍어회를 먹고 배탈이 나지 않는 원리와 같았던 모양이다.

아물거리는 먹거리에 대한 기억들이다. 이 여름철에 더 생각이 나는 고향의 먹거리이다.
원시적이면서 요즘의 먹거리와는 아주 대조적인 것들이다. 지금 그런 것을 먹어 보라 하면 맛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