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골에 처음 버스 등장 하던 날
2008년 9월 5일 오전 1:13
지리산골에 처음 버스 등장 하던 날
아득한 옛날 이런 지리산 오지 마을의 골짜기에 이상한 괴물 하나가 등장하던 날 큰 소동이 벌어졌다. 한적하고 느릿한 분위기의 1학년과 2학년만 있는 시골의 작은 학교(당시 신설학교였던 화남초등학교)에서 선생님 두 분과 두 학급이 운동장에서조회를 하고 있는데 평소에 상상도 하지 못했고 전혀 보지도 못한 이상한 괴물같은 차가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도로에 갑자기 등장을 한 것이다. 트럭이나 짚차만 보아 왔던 우리들은 길고 네모난 차가 너무나 이상해 보였다. 큰 차량인데 위에는 차의 윗부분엔 덥개가 있으니 참 희한하게 보였으며 아주 신기하게만 느껴진 차량의 모습이었다. 이 신기한 차량의 모습에 운동장에 있던 아이들 모두는 선생님의 훈시도 아랑곳 하지 않고 뒤 쪽을 돌아보고서는 순식간에 운동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차가 얄굿데이!"
"저게 뭐꼬?"
"저것은 버스라카는 기다!"
"버스?"
우리는 저마다 놀란 토끼가 되어 한참동안이나 보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뒤로 돌아"하셨다.
버스를 마음껏 구경을 하라는 선생님의 특별한 배려였다.
지리산 골짜기까지 세련되고 이상한 버스라는 물건의 등장으로 한참이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기억들이 당시의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괜히 가슴이 콩닥거려 왔고 버스라는 괴상한 물체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계속 머릿속에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버스가 처음 등장했던 당시의 엄천골 도로 사정은 요즘처럼 아스팔트로 잘 포장이 된 고운 길이 아니었다.
시원하게 뚫린 길과는 아 주 대조적인, 길의 폭이 아주 좁았으며 구불구불했고 비가 오고 난 후, 며칠이 지나면 길바닥은 쉽게 패어졌고 나름대로 길을 잘 보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길 바닥에 자갈을 깔아 놓아 울퉁불퉁한 그런 길이었으며 사람들이 도로 위를 걷기에 아주 불편했던 그런 길이었다. 혹시 맞은편에서 차가 온다고 하면 길을 비키기 위해서 뒤로 후진을 하는데 그럴 때는 버스 조수가 나와서는 버스의 뒤쪽에서 수신호와 함께 " 오라이 오라이" 하는 행동들도 아주 신기한 모습이었다. 버스가 다니는 며칠 후부터는 강가에서 버스 조수가 후진을 할 때 수신호와 함께 뇌까리는 것 처럼 고무신 차를 만들어 “오라이 오라이” 하며 뜻도 모르며 새롭고 세련된 말의 억양에 감동까지 하며 멋진 버스 조수의 흉내를 내는 차 놀이도 참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기억이 있다.엄천골에 버스가 다니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이런 놀이 문화 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버스를 이용하여 바깥으로 자주 왔다 갔다 했고, 버스에서 내려 올 때면 외지에서 사가지고 온 물건 보따리가 묵직했으며 그런 횟수가 자꾸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를 오고 갈 때 하루에 세 번 왔다 갔다 하는 버스를 만나기라도 하는 날이면 큰 행운이었고 그 우람하고 멋진 버스를 구경하는 것이 아주 재미있는 볼거리이기도 했다. 2km 정도 떨어져 가물한 버스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올 때면 아이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아예 산 언덕배기에 올라가 달리는 버스를 구경하는 것이 아주 흥미진진한 소일거리기도 했다. 둔탁한 덜덜거림의 작은 트럭보다 몇 백배나 멋져 보였고, 트럭보다 아주 부드럽게 그것도 트럭보다 훨씬 빠르게 달려오는 버스의 위력에 감탄을 하면서 그저 신기한 차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관찰 해 나가는 것이 당시의 멋진 즐거움이었다.
버스가 다니기 시작한 몇 달 뒤 우리는 이상한 사실 하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장날마다 엄천골로 장꾼의 짐을 운반하기 위해 들리는 마음씨 좋은( 당시 내가 기억하는 분 ; 창식이 아저씨 차) 분의 차가 올 때면 꼭 트럭 뒤에 우리를 자주 태어 주시곤 했는데 트럭 위의 짐 칸에 사람이 타는 것이 유일한 차에 대한 개념이었다. 그런데 우리 동네의 어른들이 버스라는 네모난 차 안으로 자꾸자꾸 올라가곤 했다. 버스라는 물체에는 사립문처럼 생긴 큰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사람들이 그 속으로 자꾸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참 이상했다. 아무도 차 주인이 타라고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너 나 할 것 없이 버스 안으로 자꾸자꾸 타는 것이 아닌가!그 어느 누구도 "차를 타도 되느냐?"하는 질문이 없었으며, 주인의 허락을 얻고 타지는 않았다. 아무나 그냥 차를 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였고 그러던 어느날 우리 다섯 악동들은큰 마음을 먹고 대담하게 버스를 타는 일을 감행하게 되었다."동네 사람들이 자꾸 차를 탄다 . 그지!" "응" "야 우리도 저 버스 한번 타 볼까?" "차 주인이 타라고 해야 타는 거지. 임마." "야 그래도 우리 한번 타 보자!" "좋아!"
학교를 오갈 때 항상 동무가 되는 또래의 윤식이, 윤호, 태조, 위춘이, 그리고 나를 합해 다섯은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버스 안은 더 신기했다.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여러개의 고급 의자가 반듯반듯하게 정렬되어 있고 그 의자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차가 움직일 때 차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감나무나 집들이 자꾸 뒤쪽으로 밀려나는 것 같았다.
버스에 오른 우리들은 아무도 말이 없었다. 속으로는 엄청 흥분이 되는 순간이었으며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그런 기분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지붕이 있어서 참 따뜻하기도 했다. 덥개가 존재하지 않는트럭처럼 차량이 앞으로 진행을 할 때 불어오는 바람을 차갑게 맞을 필요도 없었다. 경사진 급한 비탈길을 내려 갈 순간엔 내 몸이 허공에 떠 버리는 느낌이었다. 잠시였지만 머리가 핑 도는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런 현상이 차 멀미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고, 그 위대한 버스의 위용에 기가 질려서인지 그런 현기증 증세를 내색하면 절대 안되는 줄 알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어른들은 나처럼 강한 어지러움이 일어나지 않는지 태연한 자세로, 그것도 아주 조용하게 모두 바깥만 응시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면 항상 그렇게 해야 하는것으로 알았으며, 우리들은 버스 안의 분위기를 눈치껏 살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차는 우리 학교와 가까이 접근을 해 주니 너무너무 좋았다. "야! 버스 참 빠르다. 그지?" 말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새어 나가지 않게 나지막하게 윤식이가 속삭였다. 스릴과 옷이 흠뻑 젖을 정도의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벌써 버스는 학교 정문 가까이 도착을 했다. 근 한 시간이나 걸어와야 하는 곳을 10여분도 채 되지 않아 도착을 해 버렸으니 무척 아쉬움과 공허감이 맴돌았다. 다섯 악동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그것도 아주 조용하게 어른들처럼 버스에서 내리려 했다.
"차비?" "?"
버스 출입문에 발을 척 걸친 남자 차장이 우리에게 던진 말이다. 차비라니! 한번도 들어 보지 못한 용어가 아닌가! 아무나 말없이 탈 수 있는 것이 버스라고 생각했는데, 차비라니!
"차비가 뭔데예?" "햐! 요놈들 봐라. 차를 탔으면 차비를 내야 하제! 돈 말이다. 돈!" "우리 그런 것 없는데예."
어안이 벙벙한 얼굴 표정을 한 버스 차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오리잇!" 했다.
버스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교하고 집까지만 길을 알고 있는데 알지도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태우고 그냥 간다고 했다.
순간 앞이 캄캄해졌다. 공포가 엄습해 왔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늦게 학교에 가면 선생님한테 혼이 나는데, 우리를 태우고 모르는 길로 자꾸 가면 우리는 죽은 것과 꼭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학교 공부는 둘째 치고 한번도 가 보지 못한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서 그냥 내팽개쳐 버리면 길을 전혀 알 수 없으니 어떻게 집으로 가느냐, 학교엘 가느냐 하는 심각한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 직감한 모양이었다.버스라는 거대한 물체는 인정도 사정도 없이 우리를 싣고서는 아주 잔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채 몇 초도 되지 않아 버스 안은 "으왕 ......." 하는 울음소리로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버스 안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어른들은 모두 키득거렸다. 우리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기일발의 순간인데 어른들은 무엇이 그렇게 우스울까? 아이들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어른들은 구해줘야 하는 게 일반적이라 생각해 왔는데 도와주기는커녕 키득거리는 그 어른들이 무척 얄미웠고 상당한 서운함과 함께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게 느껴져 왔다."쓰톱!"
약 백 미터를 굴러 가던 버스는 차장이 앞부분에 강한 액센트를 넣어 이글거리는 눈망을 한 채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잔인하게 소리를 질렀다. 버스는 그 소리에 놀랬는지 저절로 스르륵 멈추기 시작했다. 버스 차장은 매우 높은 사람이었다. 구릿빛 이마에 주름살이 두어개 그어지면서 굵고 강한 톤으로 소리를 질러 대면 버스는 꼼짝 못하고 시키는 대로 따르는 버스를 조종하는 아주 높은 사람이라고 인식을 했다. 여태까지 그 멋지고 위대한 버스 위에서 군림을 하며 그 사람의 명령에 따라 가기도 하고 정지도 하는 그런 대단한 위력과 강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고, 그 강한 기에 주눅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너거 들 다음부터는 버스를 탈 때 꼭 차비를 준비해서 타야 된데이!" "예"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기 소리로 대꾸를 했고, 지옥에서 천당을 오고 수없이 오고 가는 순간이었다. 엄청 혼이 난 우리들은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가볍게 버스에서 내렸다. 다섯 악동들은 조금 전의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한동안 멍하니 버스만을 주시하고만 있었다. 우리를 내려 주고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학교 아랫 길로 질주를 하는 버스의 위용에 새삼 감탄을 하며 우리를 지옥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준 그 높은 버스 차장께 마음 속으로 감사와 존경의 느낌을 떠 올리며 교문으로 사뿐 들어섰다. 몸이 상당히 가벼워졌다. 줄을 서서 그 먼 길을 낑낑거리며 걸어오고 있을 갑식이, 학용이, 권상이의 존재가 가소러워져 옴을 느꼈다. 이 멋진 버스를 아직 타 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잠깐이면 이렇게 쉽게 학교엘 올 수 있는데 무거운 책보자기를 들쳐 메고 낑낑대며 오고 있을 그 친구들에게 자랑을 어떻게 할까 입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집에 가서 엄마께 이 흥분되는 무용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런 새로운 고민이 금세 뇌리에 감돌기 시작했다.
방과 후 우리 다섯 악동들이 마을에 도착 했을 때 어른에게는 벌써 소문이 나 있었던 모양이다. 버스비도 없이 대담하게, 그것도 다섯 꼬마들이 천연스럽게 버스를 탄 사실과차 안에서의 울음바다가 전개 되었던 이상한 무용담에 대해서 뒷 쪽에 앉아서우리들의 모습과 행동들을 동네 어른 몇 분이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야 너거들 대단하데이!" "차비도 없이 그냥 버스를 태워 주더냐?" "예" "우리들이 버스를 타 보고 싶어서 타 보았는데 차비도 내지 않아도 예쁘다고 그냥 태워주었어요!" 우리는 모두 하나같이 어깨가 들썩여 졌다.
신비하기만 한 첫 버스 시승기는 이랬었다. 공짜 버스를 탔다가 혼이 났던 이야기는 그 후 수십 년이 흘렀어도 기억 속에 생생하기만 하다. 그 버스를 타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상림에서 군내 종합체육대회를 하던 날 난 또 버스를 타고 구경을 갔었다. 학교마다 화려한 합주부 대열과 함께 상림엘 갔었고 버스를 통해 더 넓은 구경을 해 보기도 했었다. 버스가 움직일 때의 그 짜릿한 스릴과 흥분이 지금까지도 아련해 온다. 참 우스운 기억이다. 1965,6년의 사건이었으며, 그 때의 그 강한 여운 때문인지 객지에 살면서도 난 차를 몰고 자주 그고향 엄천골 길을 다녀오곤 한다. 곧 그 주변으로 지리산 800리를 이어주는 지리산 길이 정리 될 모양이다. 콱 막혔던 마을과 마을사이의 길과 고개와 고개를 이어 3개 도 단위와 5개 시, 군이 이어지게 될 그 때 버스가 아닌 도보로 한 바퀴 돌아 봄 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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