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이야기

세계편지쓰기대회 1등작품(1978년도)

배꼽마당 2012. 11. 9. 15:16

세계편지쓰기대회 1등작품(1978년도)

2007년 7월 3일 오후 7:34

다음글은 1978년 만국우편연합 주최 어린이 편지쓰기 대회에서 세계에서 1등을 차지한 당시 휴천초등학교 5학년 유미경양의 편지글 작품입니다.

이 편지글을 소재로 텔레비젼의 극으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는데 유미경양은 휴천초등학교 51회 졸업생이 되는데, 세월과 함께 까마득히 잊고 있는 편지글을 다시 재생 시켜 글을 올려 봅니다.

참고로 휴천초등학교는 함양군 휴천면에 있던 작은 학교로 역시 지리산 아래의 학교였는데 1998년 2월에 폐교가 된 곳입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우체부 아저씨에게


아저씨!

그간 안녕하셨어요? 5학년이 되어서 학교에서 매일 늦게 들어가게 되어 요사이는 아저씨를 만나 뵙기가 무척 힘드네요.
아저씨 제 말 들리세요? 제 얘기 물어 보세요. 그런데 제가 1학년 때 아빠께선 돌아 가셨어요. 그때는 어려서인지 그렇게 슬프지도 않았고 울고 계시는 엄마가 밉기만 했어요. 아빠가 며칠 있으면 오실 줄 알았거던요.

그러나 아빠는 돌아오시지 않았어요. 2학년이 되어서 애들이 자기 아빠 얘기를 할 때면 난 그만 고개를 숙이고 그 애들을 부럽게 생각했어요.

전에는 아빠가 어떻게나 보고 싶은지 ' 엄마랑 아빠가 바뀌어 되지 않고! ' 하는 철없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어요.
엄마가 싫어서가 아니라 엄마도 좋지만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편지 쓰기를 배웠어요. 선생님께서는 멀리 있는 사람에게 서로 소식을 전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저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왜냐하면 하늘나라에 계신 아빠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고 또 아빠의 답장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편지 쓰기' 숙제를 내어 주셨어요. 그런데 아빠의 주소는 알 수 없었어요. 엄마에게 물어 보려다, 또 엄마가 우실까 봐 망설이다가 하늘 나라라고만 봉투에 써서 학교에 가져갔어요. 학교에서 우리는 처음 써 본 편지를 책상 위에 얹어 놓고 누가 예쁘게 썼나 비교해 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얘들이

" 얘, 죽은 사람이 사는데 어디 있니? 죽은 사람이 어떻게 편 지를 받아? 그럼 또 편진 누가 갖다 준대? "

하면서 놀리잖아요. 나는 부끄러워 편지를 구겨서 가방에 넣어 두었고 선생님께서는 숙제를 안 해 왔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러나 나는 그날부터 매일 아빠께 편지를 썼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운동장에서 체육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가는데 우체부 아저씨가 오시지 않겠어요! 저는 반가워 뛰어가서 " 아저씨! " 하고 부르고 나서는 그만 뒷말을 잇지 못하고 울어 버렸어요.
아저씨는 왜 그러냐고 물어 보셨어요.

" 아저씨 하늘 나라에도 편지가 가는가요? "

" 왜, 하늘나라에 누가 있는데? "

" 우리 아빠가예 "

" 그럼 아저씨가 주소를 크게 써서 아빠에게 보내 드릴게. 내일 네 주소를 써서 편지를 갖고 와. 하늘 나라에도 편지가 가고 말고. 일본에도 가고 미국에도 가는데! "

" 아저씨 얼마나 걸리는데요? "

" 하늘 나라는 멀기 때문에 일주일은 가다려야 받을 수 있을 거야. "

정말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그 다음 날부터 나는 그 때까지 써 놓은 편지를 매일 한 통씩 아저씨께 드렸어요.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기 때문에 엄마에게 돈 달라는 소리를 안 해도 되었어요.

처음 편지를 보낸 8일 후였어요. 아저씨가 아빠가 보내신 답장을 가져 오셨어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아빤 만년필로 한 장 가득 써 보냈어요. 그렇지만 이 기쁜 소식을 엄마에겐 알릴 수 없었어요. 엄만 언제나 아빠 얘기만 하면 우시거던요.

그 때부터 난 아빠에게 매일 편지를 썼고 아빤 편지마다 답장을 해 주셨어요. 전 아빠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 공부도 열심히 했고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아빠 오실 날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마 넉 달쯤 편지가 오고 갔을 때였을 거여요.

어느 날 편지를 갖고 오신 분은 전의 그 아저씨가 아니고 다른 아저씨였어요. 그 때부터 아빠에게선 편지가 끊어져 버렸는걸요.

저는 어느 날 다른 애들이 돌아간 뒤 선생님께 살짝 여쭈어 보았어요.

" 선생님 요새 오시는 우체부 아저씬 꼭 내 편지만 빠뜨리고 오시나 봐요? "

" 왜, 누구 답장을 기다리나 보지? "

" 예, 우리 아빠요. "

" 아빠가 어디 계신데? "

" 하늘 나라에 …… "

" 그래? "

한참 나를 바라보고 계시던 선생님께서는 내 손을 잡으시며

" 미경아, 하늘 나라에는 편지가 갈 수 없단다. 이제 미경이는 3학년이 되었으니 알 수 있겠지? 먼저번 아저씨는 정말 훌륭하신 분이구나. 미경이가 아빠가 안 계신다고 슬퍼할까 봐 미경이에게 용기를 주려구 아저씨가 미경이 아빠 대신 답장을 해 주셨던 게로구나! "

나는 그만 울음이 터졌습니다. 그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때서야 선생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난 그 아저씨를 생각한답니다.

우리 아빠가 되어 주셨던 우체부 아저씨. 5학년이 된 지금도 난 그 아저씨를 잊을수가 없습니다.

애들은 자기 아빠 얘기를 하면 난 항상 그 고마운 우체부 아저씨를 생각한답니다. 내가 착하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게 꿈을 키워 주신 정말 훌륭하고 고마우신 우리 우체부 아저씨. 난 아저씨가 우리 아빠였음 좋겠어요. 하늘 나라에 계신 우리 아빠만큼 좋은걸요.

아저씨 언젠가 제가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면 아저씨 은혜 잊지 않겠어요.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아저씨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의 좋은 친구 우체부 아저씨. 지금도 무거운 가방을 메고 비탈진 언덕길을 즐거운 마음으로 오르내리시는 아저씨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려요.

아저씨!

오늘은 이만 쓸게요.
전학간 우리 동무 얘기랑, 시집간 고모 얘기랑, 즐거운 소식 많이 기다릴게요. 아저씨 그럼 안녕.

1978년 3월 28일
미경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