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동부자락 옛 기록물

두류기행(유정탁)

배꼽마당 2013. 8. 30. 12:15

목헌 유정탁

(柳正鐸 1752-1829)

 

직재(直哉), 호는 목헌(木軒) 농암(聾巖)이며,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고조인 유진창(柳晉昌) 때에 처음으로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丹城) 정태(丁台)에 살았다. 족숙인 죽계(竹溪) 유증서(柳增瑞)에게 고문상서모시(毛詩)를 배웠으며, 약관도 되기 전에 문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과거공부를 접고 하동의 청학동, 함안의 구성대(九成臺), 운봉의 벽송암 등 산수 간에서 노닐며 자적하였다.

 

집재(入齋) 정종로(鄭宗魯)가 대산(大山) 이상정(李象埥)의 학문을 계승하여 상주에서 강학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시를 통해 도의지교를 맺었고, 문중의 영재들을 보내 배우도록 하였다. 저술로 청천가고(菁川家稿)에 수록된 목헌고가 있다.

 

 

 

 

 * 일 시 : 310- 314(45)

 * 동 행 : 강씨 어른, 신창언, 이대집, 정직정, 노환, 유임택

 * 일 정 :

3/10: 손곡함허동예촌화림암(1)

3/11: 화림암엄천사도지소회정문수암(1)

3/12: 문수암벽소암용유담(1)

3/13: 구송대(1)

3/14: 귀가

 

 

 

310.

길을 나서 손곡(孫谷)에 이르렀다. 서주(西洲) 강씨(姜氏) 어른과  신창언(愼昌彦) (이대집(李大集) 등이 나와  정자 그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뒤 함께 함허당(涵虛堂)에 이르렀다. 나무가 늙어 그늘이 성글어서 바위가 있는 물가로 내려가 쉬었다. 7리 물굽이에는 흰 돌이 언덕에 가득했다. 강을 거슬러 한참 가니, 손곡의 사람들이 도시락을 많이 가지고 와서 강을 따라 유람하는 수고로움을 위로하였다.

 

예촌(禮村)으로부터 화림암(花林菴)으로 향하려는데 길이 벼랑 끝에 있어 온갖 어려움을 겪었다. 조금씩 조금씩 1백 걸음 정도 가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수석이 점점 기이하고 빼어나 보였다. 석양 무렵에 비로소 절문에 들어섰다. 전각이 넓고 확 트여 좋아할 만하였다.

 

11.

내가 엄천사(嚴泉寺)에 이르자, 정직정(鄭直棖)은 먼저 물을 건너서 떠났다. 나는 강가에서 도지소(搗紙所)를 구경하였는데, 구름낀 산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내가 이런 데서 산다면 산수를 탐하는 도적이 이익을 즐기는 것일 터이니, 우습구나. 이에 돌을 가지고 장기를 두며 자못 장대하고 기괴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천(薇川) 노환(盧桓)이 소식을 듣고서 찾아왔기에 서로 더불어 실컷 웃고서 일어났다. 길을 나서 회정(灰亭)에 이르자, 종군(宗君) 유임택(柳霖澤)이 안내를 하였다.

 

저물녘 문수암(文殊庵) 나루터에 다다랐다. 굽이굽이 푸른 강물이 바위에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이곳은 운봉(雲峰)의 하류이다. 강물이 협곡에서 나와 한 번 빠르게 흐르고 한 번 굽이돌았다. 물가에는 절구처럼 푹 패인 큰 바위가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신선의 김치 항아리라고 하였다. 방향을 바꾸어 골짜기 입구로 들어가니, 나물 캐는 아낙과 나무하는 아이들이 온 산에 가득하였다. 절에 들어가자 밝은 달이 이미 고개 서쪽에 떠 있었다.

 

12.

벽송암(碧松菴)을 유람하였다. 아래로 깎아지른 절벽을 내려다보니, 진귀한 나무가 끝이 없었다. 왼쪽에는 용유담(龍遊潭)이 있는데, 남북으로 모두 빼어난 경관이었다. 용유담 가는 예닐곱 명의 노승이 지팡이를 멈추고서 시를 읊조리고 있었는데, 묘향산(妙香山)에서부터 산수를 두루 유람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에 용유담에 대한 시를 지어 서로 보여주었다.

 

13.

구송대(九松臺)를 유람하였다. 이때 산안개에 비올 기미가 가득하여 형악(蘅嶽) 시를 읊어 마음을 위로하였다.

 

다음 날, 작별할 때 산속의 맑은 물을 가득 떠서 마신 뒤, 8월에 해령(海嶺) 사이를 유람하자고 약속하였다.

 

<번역자 : 강현진>

 

 

  *** <최석기>님의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서  ***

 

자료 : 자료: http://www.jiri99.com/index.php?mid=yetsanhanggi&document_srl=392632 (지리산아흔아홉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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