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동부자락 옛 기록물

유용유담기(조구명, 1724년)

배꼽마당 2013. 9. 7. 16:48

-푸른 시내를 굽어보니 속세의 번뇌를 말끔히 씻어주네-

 

   갑진년(1724) 8월 초하루, 백형이 지리산을 향해 출발했다. 나와 조우명(趙遇命)조재복(趙載福)이 따라갔다. 사근역(沙斤驛) 독우(督郵) 권흡(權熻)과 그의 아들 권상경(權尙經)도 함께 갔다.

   먼저 용유담(龍游潭)을 구경하였다. 용유담은 지세가 깊고 그윽하였으며, 바위들이 모두 개의 송곳니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물길이 굽이굽이 소용돌이치며 세차게 흘러내리는데,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용당(龍堂)이 맞은편 언덕에 있었는데, 나무로 엮어 만든 다리가 놓여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헤아릴 수 없이 까마득하여 위태롭게 매달린 다리를 건너자니 아찔하고 벌벌 떨려서 건널 수가 없었다. 다리 옆의 바위들을 넘어서 동쪽으로 백여보를 가니, 큰 바위가 언덕에 붙어 가로 놓여 있었는데, 그 모양이 둥글기도 하고, 타원형이기도 한 것이 패옥 같았고, 움푹 파인 곳은 술잔과 술통 같았다.그 너머 몇 길이나 되는 바위에는 길 같은 흔적이 굽이굽이 이어졌는데, 마치 용이 머리를 숙인 듯 꼬리를 치켜든 듯하였다. 갈고 다듬은 듯 반질반질하여 그 형상이 지극히 괴이하였다.‘용유담이라는 이름은 이러한 데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날 밤 승려 정혜와 함께 군자사(君子寺)에서 묵었다. 정혜가 말하기를에전에 마적조사(馬迹祖師)가 용유담 가에서 하안거(夏安居)를 할 적에 물소리가 설법을 듣는 데 방해되었기 때문에, 용에게 화를 내어 채찍질을 해 쫓아내었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 설이 황당무계하여 사람들이 믿으려 하지 않지만, 나는 천하의 일에는 상식으로 다 설명될 수 없는 것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유(韓愈)가 말하기를승려들은 변신술이 뛰어나고 재주가 많다라고 하였는데, 마적조사가 용을 항복시키고 호랑이를 복종하게 하는 술법이 없었다고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용의 성품이 바위에 나타나진 않았지만, 용이 바위 속으로 들어가면 바위는 그 모습을 드런내게 된다. 그런데단단한 바위는 뚫을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다만 사람들의 견해가 그러해서일 뿐이다. 그대로 드러나진 않지만, 바위에 들어가면 비쳐서 나타나게 되니, 사람들이 이를 보고 용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라 생각하는 것은 다만 사람들이 그렇게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도 그 실정을 다 예측할 수 없는데, 하물며 신룡(神龍)을 예측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이 있다고 말할 경우 믿는다고 하는 것은 망령된 것이고, 이런 일이 없다고 말할 경우 믿지 않는다고 한다면 또한 망령된 것이다.

 

   지리산 북쪽에 펼쳐진 천석(泉石) 가운데 이 용유담이 가장 빼어나다. 나는 그 기세와 장관을 좋아하여 조우명(趙遇命)에게 바위의 남쪽 벽면에 다섯 사람의 이름을 쓰게 하고, 그 아래에 내가바위가 깎이고 냇물이 세차게 흐르니, 용이 노하고 신이 놀란 듯하다 石抉川駛龍怒神驚라는 여덟 글자를 적었다. 후에 석공을 시켜 새겨 넣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지세는 매우 깊고 그윽하며,                 地勢陰森最

           시내는 격렬하게 쏟아져 내리네 .                  川流激射來

           바람 불고 구름 일자 용이 솟아올랐다가,    風雲龍拔出

           보금자리 찾아서 바위 뚫고 돌아오네.          巢宅石穿回

           깊은 가을 날씨처럼 오싹한 느낌,           凜若深秋氣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치는 용의 조화,        公然自日雷

           위태로운 출렁다리 건너질 못하고,         危橋跨不測

           바위 넘어 새 길 찾아 건너간다네.         生路渡方開

 

 

 

*** <최석기>님의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서 발췌함. ***

 

자료  :  http://www.jiri99.com/index.php?mid=yetsanhanggi&page=2&document_srl=253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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