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어귀에서의 작은 사건
1997년도는 개인적으로 진짜로 고향과 인연을 맺었던 해이다. 외지에서 근무를 하다가 지원을 하여 처음으로 고향 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으니
나름대로 감개무량해 했던 해이기도 하였다.
다른 곳도 아닌 고향의 한 면에 있는 휴*학교여서 더더욱 애정이 동하는 곳이기도 했다.
문제는 근무환경이 너무 다르다는데 있었다. 4300명의 규모 학교에서 전교생이 7명인 학교였으니 적응을 하는데 제법 몇달이 걸렸다.
어느 농촌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고향 학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졸업을 하는 학생은 있어도 입학을 하는 학생이 거의 없으니 문제가
심각해지는 현실이었다.
80여년이나 지속되어 온 학교를 내 손으로 폐교를 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되었을 때는 앞이 캄캄해졌다.
안타까운 현실 때문에 말이다.
직업적인 고향 사랑 이전에 당장 직업적인 안타까움이 더했다. 아이 한 사람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새삼 느껴 본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안타까운 심정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2학기 초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유치반 아이 두명이 전학을 온 것이다.
7살짜리 남자 아이 한명과 동생인 5살 여자 아이가 함께 유치반에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의 손목을 잡고 교무실에 들어서는 그 아이들이 너무 예뻐 나는 그들에게 선물 하나를 준비했다.
내가 잘 써 먹는 마술 선물이었다.
서먹하고 낯설어 하는 두 꼬마를 위해 교무실 서랍장에 들어 있던 노끈 뭉치를 꺼내어서 적당한 길이로 잘라 두었다. 가위 하나와 길다란
노끈 하나를 들고 교무실의 쇼파로 접근을 했다.
그때까지도 그 아이들은 멀뚱하고 아주 어색한 눈망울로 나를 치어다 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딱딱한 분위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오신 어머니의 표정 역시 그렇게 밝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무리 시골 분위기가 정서적이고 시적이라 하지만 아이들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시골 학교의 고즈녁함에 짓눌린 듯 했다.
그런 분위기를 읽은 나는 분위기를 바꿀 겸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시골의 좋은 점을 역설하면서 슬슬 작전에 돌입을 하기 시작했다.
" 이 줄을 정확히 절반으로 접어서 나에게 줄래?"
7살 남자아이에게 갑자기 엉뚱한 제안을 했다. 갑자기 무슨일이냐는 표정이었다.
내 손 안에는 그 노끈과 꼭 같은 5cm 길이의 줄이 미리 잘려져 들어 있었다.
그에게서 절반으로 접은 노끈을 왼손 주먹안으로 감취 넣었다. 나머지 노끈의 줄은 손목 아래로 치렁한 상태로 말이다.
" 내가 이 노끈을 잘랐다가 다시 붙여 볼께."
" ? "
미리 손목안에 알맞은 길이로 잘라서 넣어 두었던 노끈을 불끈 쥐고 있는 손목 위로 조금 뽑아 올렸다.
그네들이 보기에는 자기가 반으로 접어서 건넨 그 노끈을 집어 올린것 같이 보였을 게다.
불끈 쥐고 있는 주먹 위로는 약간 위쪽으로 솟아 올린 노끈을 가위로 잘랐다. 또 한번 더 잘랐다. 확실히 잘랐다는 것을 확인 시켜 주기 위해
그네들에게 자른 부분을 재 확인 시키기까지 했다.
그 자른 일부분을 주먹안으로 밀쳐 넣고는 가위를 교무실 한켠에 갖다 두면서 나머지 자른 일부분은 눈치를 채지 못하게 아래로 자연스럽게
떨어트려 버리고는 그네들 앞으로 와서
" 자 지금부터 이것을 붙여 볼 것이다."
노끈을 감싸쥔 왼손의 손목위로 오른손의 손목도 함께 감싸 쥐었다. 그리고는 온갖 힘을 다한다는 얼굴 표정도 함께 연출했다. 악을 쓰는듯
, 젖먹던 힘까지 쏟아 내는 듯, 그러면서 자른 노끈 부위를 강력 본드나 기타 접착제 하나 없이 그냥 기 하나로만 붙이기는 무척 어렵다는듯한
판토마임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 조용히 하고 바라 보아야 이 노끈이 붙을 거야,"
" ? "
아이 둘의 눈 빛이 더 동그래져 갔다. 그네들이 더 긴장을 하는듯 했다.
가위로 자른 노끈이 절대로 붙을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까지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후 이상한 주문까지 외워 나갔다.
" 수리수리 수구리 수구리 당당. 노끈아 붙어라 얏! "
주문을 외우고 난 후 7살 남자 아이의 손으로 직접 펴 보이게 했다.
" 아주 조심해서 펴 보아야 한다. 잘못하면 붙은 것이 떨어질 수도 있거던,"
필요 이상의 요구까지 하면서 주먹속에 쥐고 있던 노끈을 살그머니 펴 보게 하였다.
그의 동생이 더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노끈의 접은 부위로 주목을 했다.
" 어 붙었네! 진짜로 붙었네! "
곁에 이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던 엄마도 신기해 했다.
오빠는 노끈을 세게 잡아 당기기도 했다. 붙은 것이 확실한지 재 확인을 하려는듯 또 잡아 당겨 보고 당겨 보기를 여러번, 이번에는 동생이 노끈을 재 확인 한다.
" 햐! 진짜 붙었네. 선생님 마술쟁이예요?"
" 응 "
" 어디서 마술 배웠어요? "
" 지리산에서! "
" 또 한번 더 해 보면 안 돼요?"
" 어렵겠는데. 한번 붙이는데 많은 힘이 들어서 최소한 한시간쯤 힘을 모아야 다시 마술을 할 수 있단다. "
그 두 아이와 첫 대면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시골 학교의 고즈녁함과 썰렁함이 이것으로 해결이 되었다고 단정을 했다. 그네들과의 레포 형성도 함께 이루어 졌다고 단정을 했다.
그 이후에 자주 또 다른 마술 주문이 있었다. 복도에서 지나칠 때마다 마술 주문을 해 왔다. 마술이라고는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노끈 마술 뿐인데
더 이상의 다른 마술은 전무한 상태여서 매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한달 쯤 지난 어느날 조용한 교무실로 유치반 아이 두명이 대뜸 들어 와서는 다른 마술을 보여 달라고 조르기 시작 했다.
매번 실망을 시킨 것도 죄라 싶어서 주머니 속에 있는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라이터의 불을 켜 보이기도 하고 주먹 속에 쥐기도 해 보고, 감추기도 해보고 그 순간 라이터를 호주머니 속으로 살그머니 집어 놓고서는
태연하게 오른 손 주먹을 둥글게 쥐고 있었다.
" 이 라이터 한번 먹어 볼까?"
" 예 "
미리 주머니 속에 넣은 후라 주먹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먹 속에 들어있는 라이터를 잽싸게 입속에 넣는 흉내를 내었다.
그리고는 혀를 볼 한쪽으로 세게 밀면서 라이터를 씹는 흉내를 내었다.
큰 라이터가 입속에 들어가서 씹기가 아주 거북하다는 듯 혀의 끝을 더 불룩하게 한 쪽 볼을 밀어 내면서 입을 다물고는 씹는 흉내를 연출해 내었다.
침을 꼴깍 삼키면서 아주 징그럽다는 그네들의 표정을 읽으면서 이내 꼴깍 삼켰다.
" 햐 ! 진짜루 먹었다. "
입속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듯 입을 벌려 확인까지 시켜준 후 갑자기 배를 움켜 쥐었다.
" 아이구 배야. 아이구,,,,,,"
고통스런 얼굴 표정과 함께 잠시후 나는 교무실의 쇼파 위에 벌렁 드러 누웠다.
숨을 억지로 참으면서 더 이상의 동작은 하지 않았다.
" 어 . 선생님이 죽었다! "
오빠와 여동생은 나의 코 가까이 손가락을 대어 보는 행동까지 했다. 그 순간에는 숨을 멈추었다.
" 진짜로 죽었다 ! "
순간 여동생의 손바닥이 내 뺨위로 찰싹 갈겨졌다. 7살짜리 오빠의 손바닥도 아까보다는 더 힘있게 갈겨졌다.
내 빰이 얼얼해졌다.
잠시후에 동생의 손바닥이 조금 전보다는 더 힘이 실려 찰싹 갈겨졌다.
손바닥의 맛이 얼얼할 정도로 조금전 보다는 많은 힘이 실린 탓에 뺨이 더 얼얼 해졌다.
더 죽어 있다가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까 보아 번쩍 눈을 떴다. 뺨이 아픈것과 함께 끼고 있는 안경까지 깨어질까 봐 살아나 주기로 한 것이다.
" 아 시원하다. "
그네들의 안타까움을 해결해 주어야 겠다는 취지에서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살그머니 입속에 넣고서는 힘들게 입속에서 빼어 내는 시늉을 했다.
그 두 아이는 비로소 안심이 되는 듯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그 이후로는 마술을 해 달라고 조르는 일은 없었으나 나의 별명은 라이터 선생님으로 통했고, 다른 형태의 놀이 친구로 더 잘 통했다.
두 유치반 아이의 등장으로 학교는 제법 그럴듯 했으나 1년후엔 그 아이도 다시 전학을 가야 했고 80년을 자랑하던 그 학교는 다음해 2월에
도 교육청의 1면 1교 주의 원칙에 따라 폐교를 해야만 했으며 적막하고 쓸쓸함만이 학교 주변을 감돌기만 했다
독거미
“ 히히, 네가 지리산 탐방을 처음 한 강한 추억을 남겨 줄려고 그랬는데, 하하하 ” 그 아이는 내 주변만 자꾸 맴돌기를 여러번 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될 무렵 서울의 자매 결연을 맺은 초등학교 학생 100여명을 초대하여 연합 야영활동과 함께 농촌 체험 활동의 프로그램에 따라
감자 캐기 체험, 옥수수 삶아 먹기, 백무동에서 내려오는 개울에서 물놀이 체험, 백무동을 거쳐 첫나들이 폭포까지 산악 체험 및 눈을 가리고 노끈을
서울의 아이들은 시골의 분위기를 참 좋아 했다. 백무동 계곡의 숲속에서 울어 대는 매미소리에도 신기해했고, 첫나들이 폭포에서 미역을 감는
마천 아이들과 서울의 아이들은 금세 친구가 되어 첫나들이 폭포까지 오르는 동안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난 서울의 한 아이에게 진한 추억을 안겨 주기로 작정했다.
" 이 산이 무슨 산인지 아니?"
" 설악산 아니예요?"
무심코 던진 말에 그 아이도 불쑥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 설악산은 강원도에 있잖아!"
" 아 맞다! 지리산! 맞지요? "
" 그래 정답이다! "
그렇게 묻고 답하기로 시작을 하여 곧 본론으로 전개를 하기 위한 준비단계의 도입 작전이었다.
“ 이 지리산엔 독충이 많은데 특히 독사나 독거미를 조심하거래이!”
“ ? "
" 2주일 전 등산객 한 사람이 산을 오르다가 독거미에 물려 중태에 빠졌다는 뉴스를 MBC 저녁 9시 뉴스에 보도 된 것을 안 보았니?“
“ ? ”
나와 함께 백무동을 거쳐 첫나들이 폭포로 오르던 중 은밀하게 중얼거리듯 뇌까린 말이었다. 자연스럽게 던져 댄 말에 5학년 남학생은 소름이 돋는
물론 우리 나라에선 아직까지 독거미라는 존재가 학계에 보고 된적이 없으며 특히 지리산에 독거미의 존재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럴싸하게 연출해
TV에서 자주 보았던 동물의 왕국이나 곤충의 세계를 자주 접했을 서울 아이라고 생각해 지라 쉽게 분위기에 말려 들 것이란 기대감에서 연출해 낸 것이었다.
산을 오르는 길옆에서 강아지 풀 하나를 뽑았다. 서울의 한 아이에게 진한 장난을 칠 멋진 도구였다. 백무동 계곡의 음산한 분위기에 도취되어
그 아이는 목덜미에 붙은 파리라도 쫓는 양 손으로 목 부분을 연거푸 털어 냈다.
또다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강아지풀로 간질렀다.
역시 그 아이의 손은 목 부분의 귀찮은 파리를 자꾸 쫓아 댔다. 무심코 하는 동작이었지만 모두 각본에 있는 전개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 이 지리산에서는 특히 독거미를 조심해야 하는데....... ”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함께 첫나들이 폭포를 향해 산을 오르는 서울의 아이들을 걱정하는 듯한 독백을 한 아이의 귀에만 들리도록 초점을
또 조금 뒤 쳐져서 강아지 풀을 그 아이의 목덜미에 대고 살금 간질러 댔다.
“ 어 ? ”
이번에 서울의 아이는 신음을 하듯 가던 걸음을 멈칫하면서 긴장을 하는 듯 했다.
그도 그럴것이 시골의 자매 결연을 맺은 학교 선생님이 안내를 하고 있고 그 지역의 실정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이 그렇게나 안전 문제에 대해서
그 순간을 놓칠리 만무했다.
“ 어이쿠 이거 큰일 났네! ”
서울 아이는 갑자기 뻣뻣한 전봇대가 되어 버렸다. 꿈적도 하지 않은 것이다.
“ 선생님 내 목에 뭐가 붙었어요? ”
“ 잠깐 가만히 있거래이. 내가 좀 전에 걱정했던 지리산 독거미가 지금 네 목에 기어다니고 있구나!”
더 호들갑을 떨며 심각한 걱정을 하는듯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라는 종용을 했다.
“ 독사와 벌, 독거미는 자기를 공격하거나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 물거나 쏘지 않거던. 현재의 상태로 가만히 있어. 그러다가 독거미가 살그머니
“ 어 좀 떼 내어 주세요. ”
아주 애절한 목소리였다.
“ 그대로 가만히 있거라. 저절로 도망을 가 버리게 말이야. ”
웃음이 튀어나오는 것을 꾹 참고 아주 태연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던졌다.
강아지 풀을 한동안 간질러 대다가 강아지 풀을 귓 살과 어깨 사이에 살짝 걸쳐 두었다. 강아지 풀은 그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함께 움직거렸다.
아주 부드럽게 말이다. 그 느낌은 벌레가 아주 알맞게 기어 다니고 있는 그 감각이라는 것을 잘 아는 터라 그대로 두고 저만치 나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 아이는 그대로 꿈쩍도 하지 않고 두 손을 약간 벌린 채 굳어 버린 자세로 서 있기만 했다. 저만치서 뒤 따라 오던 서울의 친구들이 그 아이의
“ 너 지금 왜 그러니? ”
“ 야 임마 말하지 말고 가 버려. ”
양 손을 약간 벌린 채로 얼굴만 찡그리고 울상을 짓는 그 표정이 이상한 듯 연달아 따라 오르던 다른 여학생들마져 그 아이의 기괴한 모습에 이유를
“ 넌 안 올라가고 왜 그렇게 서 있냐?”
가관이었다. 더 두었다가는 문제가 야기될 듯하여 그를 독거미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야 했다. 다시 내려가 그 아이의 목덜미에 얹혀져
“ 이제 독거미가 도망을 간 모양이다. 괜찮아.”
“ 진짜 독거미가 도망을 갔어요? ”
“ 그렇대두 ”
땀을 뻘뻘 흘리며 태양이 작열하는 지리산의 등산길 어귀에서 그 아이는 독거미의 공포에서 비로소 해방이 된 것이다.
“ 사실 그 독거미는 이 강아지 풀이었어. ”
“ 예에 ~ ! ”
강아지 풀에 완전히 속아버린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아니면 점잖은 척 하면서 자신에게 장난을 친 나를 원망하듯 등을 밀쳐댔다.
“ 아이 선생님 너무 심했잖아요! ”
그와 난 백무동의 계곡에서 한참이나 웃어댔다. 다른 아이들은 두 사람이 웃는 연유를 모르고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 아이는 내려 올 때도 다른 친구들에게 나를 보고 ‘독거미 선생님’이라며 계속 장난을 걸어 왔다. 저녁에 야영을 할 때도, 잠행 활동을 할 때도
지리산 아이
* 다음은 지리산 백무동 아래의 마천에서 있었던 실제의 이야기입니다.
"너희 집이 어디니?"
"어! 마술 선생님!"
아이는 대답은 않고 6학년 선생님을 보고 싱글거리며 얼른 접근해 온다.
"선생님, 마술 한번만 보여 주세요. 네?"
능청을 떨며 차알싹 달라붙어서 대뜸 마술을 보여 달라고 조른다.
"선생님 이제 마술을 할 줄 모르는데! 이거 어떡하지?"
"에이, 라이터 먹는 것 있잖아요?"
"이제 라이터를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부르단다."
"에이, 한번 먹어 보세요"
주머니에서 살그머니 라이터를 보여 주고는 아이가 눈치를 못 채게 다시 호주머니 속으로 그것을 감추고 주먹을 쥐어서는
"이 라이터를 어떻게 먹니?"
"전에처럼 한번 먹어보세요."한다.
선생님은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은 주먹 속에 그 무엇을 한 움큼 입 속으로 집어넣고는 입을 우물우물한다. 그것도 혓바닥을 왼쪽 입천장에 힘껏 내밀며
우물우물 하는 꼬락서니가 영락없이 라이터를 아주 힘들게 씹고 있는 모습이다.
"햐! 진짜 라이터를 먹네!"
아이는 황당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신기한 듯한 감동마저 얼굴에 비춰진다.
"너 그런데, 선생님이 어디 사냐고 물었었지 않아?"
"어! 안 죽네!"
완전히 동문서답이다.
아이는 계속 자신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시각으로만 선생님을 바라보고 해석할 뿐 대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선생님, 라이터 먹어도 안 죽어요?"
2주일 전에도 라이터를 먹어 주었지만, 아이는 그때마다 감동을 하고 감탄을 하며, 참 재미있어 한다.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엘 입학하고 두어 달 지나서 같은 학교의 6학년 선생님과 병설 유치반의 한 남자아이와의 대면은 으레히 마술로써 시작이 되었고,
이 어설픈 마술이 두 사람 사이의 레포 형성에 상당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너희 집이 어디니?"
"배액수요."
"?!"
자기가 사는 동네 이름이 백수란다. '백수 건달' 이란 낱말 속의 그 백수란 말인가? 6학년 선생님은, 눈이 동그랗고 이마가 훤칠한 이 유치반 남학생의
순진한 발음에 많은 호기심과 장난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네가 사는 동네 이름이 백수라 했어?"
"에이 '백수'가 아니고 '배-액-수'요!"
너무나 답답하다는 듯, 포동포동한 이맛살에 주름살 두어 개가 일그러진다. 제법 진지한 표정과 귀찮다는 표정이 유치반 아이의 얼굴에 그어지기까지 했다.
부임한 지 1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학구의 구석구석까지 가정 방문을 한 경험이 있는 6학년 선생님의 귓전에 와 닿는 '백수'라는 마을의 이름이 약간 신비로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 신비의 '백수'라는 자연 마을의 이름은 마천면에서 함양읍 쪽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오도재 어귀의 '별약수'라는 작은 마을의
이름을 유치반 아이는 세 음절 중 가운데 음절의 'ㄹ'발음이 잘 되지 않는 여섯 살짜리의 유치반 꼬마라는 것과, 아주 활달하면서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까지 유치반 담임으로부터 알아낼 수 있었다.
"6학년 선생님, 우리 백수를 아들 삼으실려구요?"
"!"
그 이후부터 그 아이의 별칭은 이름 대신 백수로 더 쉽게 불리어졌다.
"백수!"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 놀던 그 유치반 아이는 금방 싱글거리며 6학년 선생님께로 쪼르르 뛰어온다.
"내 이름이 백수 아닌데…! 선생님 마술 보여 주실려구요?"
이름 대신에 별칭으로만 불려지던 그 백수와 6학년 담임 사이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친구 비슷한 제법 만만한 사이가 되어 갔다. 같이 무릎을 맞댈 정도로.
여름 방학을 며칠 앞두고서는 6학년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서슴없이 던질 수 있을 정도로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있었다.
"백수야!"
"……."
"넌,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니?"
"없어요."
"어! 그러면 큰일인데! 백수야 가만히 생각해보렴. 너희 선생님께서도 유치원 다닐 때 남자 친구를 정해 놓지 않아서 아직까지 결혼도 하지 못하고
있잖아. 너희 선생님도 결혼 못했지?"
"네."
"거봐."
눈망울에선 제법 심각해지기 시작하는 눈빛이 아롱거린다.
"그러게 말이다. 엄마도 아빠랑 결혼했고, 할아버지도 할머니랑 결혼했고…."
"……!"
"그런데 넌 어떡할래? 없으면 지금부터 여자 친구를 정해 놓아야지!"
백수의 얼굴 표정이 약간 심각해졌다. 6학년 선생님은 심각하게 자신의 장래 문제를 걱정해 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것도 자기를 많이 사랑하고
귀여워해서, 평소에 6학년 선생님을 많이 따르고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6학년 선생님이 자신의 장래 문제를 걱정해 주는 것이리라 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선생님, 그런데 결혼 같은 거 안 할 거에요."
"어! 정말?"
"결혼하고 싶으면 울 엄마하고 할 거에요."
"!"
어린 아이들의 특성이 그렇듯이 어른들에 대한 높임말의 개념 형성이 안된 탓에 약간의 개구장이 말투와 함께 자기식대로의 답변으로 일관했다.
며칠 후엔 운동장에서 자기 또래들이랑 뛰어 놀던 그 백수가 다른 유치반 아이들을 데리고 뛰어왔다. 그네들은 곧 마술 솜씨를 보여달라고 조를 게 뻔했다.
6학년 선생님의 입가에서는 싱긋 미소가 머금어졌다.
"어이. 백수! 저번에 내가 물어 봤던 거 엄마하고 상의해 봤니?"
"아니오."
전번의 그 문제란 유치반 시절에 여자 친구를 미리 정해 놓아야 나중에 장가를 갈 수 있다는 6학년 선생님의 애정 어린 그 충고에 관한 것이었다.
"아직도 엄마하고 결혼 할거야?"
옆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히히히. 엄마하고 결혼하는 사람이 어딨어?"
곁에 있던 또래들의 핀잔에 백수의 얼굴이 이내 홍당무가 되어졌다. 무언가 불만인 듯 양쪽 볼이 씰룩거린다.
"나 여자 친구 있는데…!"
자존심이 많이 상한 얼굴이다. 이내 그 좋아하는 6학년 선생님의 다른 마술을 구경도 하지 못하고 운동장 저 켠으로 달음박을 쳤다.
6학년 선생님의 질문에 항상 재미있는 답변이 술술 나오는 그런 백수의 모습에서, 때로는 엉뚱하고 이상한 질문에 그때마다 심각해지고 고민에 빠진
듯한 그런 백수에게서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까무잡잡한 얼굴빛에다가 훤칠한 동안의 얼굴에 항상 여유 만만하면서 어른들의 질문에도
서스럼 없이 답변을 하는 그런 백수의 모습을 무척 좋아했다.
말을 배울 때의 어린아이들이 다 그렇듯이 낱말 받침 발음이 잘 되지 않거나, 연결음에서 어떤 자음 발음이 되지 않는 발음을 그것도 어설프게 말을 할
때의 그런 어린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6학년 선생님은 자기네 학교의 한 병설 유치반 아이에게서 발견하고는 마냥 좋아라 하고 있는 것이다.
"저번에 말한 것을 잊어 버렸는데, 네가 살고 있는 동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에이 선생님은 왜 그렇게 머리가 나빠요? 여러 번이나 물어 놓구선!"
"선생님은 그때 다른 생각을 하면서 들어서 그래."
"선생님 이번엔 다른 생각하지 말고 똑똑히 들어 두세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이마의 주름살을 곤두세우더니만
"배-액-수"한다.
"뭐라구? 선생님이 잘못 들었어. 한번만 더 말해 줘. 응?"
"에이 선생님이 말을 못 알아들어요?"
무척이나 귀찮다는 표정이다. 선생님이 되어 가지고 아이들 말하나 알아듣지 못한다는 표정이다.
6학년 선생님의 얼굴 모습에서는 장난기가 어려 있고, 벌써 몇 달 동안이나 반복된 질문이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백수는 진지하게 어설픈 발음으로
답변을 해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 이번엔 잘 들어주세요. 잊어 먹지 말구요?"
목젖을 새삼 가다듬고는 이내
"배-액-수"한다.
"아하! 너희 동네 이름이 '백수'란 말이지?"
"에이. '백수'가 아니고 '배-액-수'요."
2학기가 되어서도 그 유치반 아이는 자기 동네 이름이 '별약수'란 발음을 하지 못했다. 6학년 선생님은 만족한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그 백수는 그제서야
자기의 소임을 다 했다는 듯 6학년 선생님과 함께 낄낄 웃었다.
백수뿐만이 아니라 다른 유치반 아이들은 6학년 선생님의 모든 행동들이 마술 행위로 보이는 모양이다. 담배 연기를 한 모금 진하게 빨고 그것을 입안에
머금고 있다가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머리 뒤통수를 살짝 갖다 댈 때마다 담배 연기가 뿅뿅 튀어나오는 연기를 해보기도 하고, 어떨 땐 머리 뒤통수를 툭
치고는 순간 동작으로 혀를 쑥 내밀고 오른손으로 목젖을 당길 때 혓바닥이 쑤욱 들어가게 하는 동작을 해도 유치반 아이들은 감동을 하고 무척 좋아라
한다. 그 모든 것들이 마술로 보이는 모양이다.
작은 행동의 모습에도 쉽게 감동을 해 주고, 반응이 있어 주는 그 유치반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6학년 선생님의 작은 행복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때하나 묻지 않고 너무나 순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6학년 선생님은 작은 행복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때하나 묻지 않고 너무나 순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6학년 선생님의 소싯적 그리움을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 아이들 중에서도 특히 백수가 6학년 선생님을 더 따랐다.
지리산의 산자락마다 단풍잎이 오색 잎으로 물들어 갈 무렵 그 백수가 6학년 선생님에게로 뛰어왔다. 마치 아주 중대한 말을 전달할 태세다.
"선생님, 저번에 그 말인데요. 저…!"
말을 꺼내다 말고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이 진지하다 못해 제법 심각했다. 6학년 선생님도 백수의 얼굴 가까이 귀를 갖다 대고 진지하게 들어 줄 모양새를
취했다. 그때서야 백수는 용기를 얻었는지 다음의 말을 내뱉을 준비를 했다.
"전번 때 선생님께서 물으신 건데요. 결혼할 여자 친구 말인데요…"
얼굴이 빨개지면서 계속 말을 머뭇거릴 때 6학년 선생님이 얼른 말을 받는다.
"아하! 이제 여자 친구를 구했다 이 말이지?"
"예.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아셨어요?"
"선생님은 백수의 얼굴만 봐도 금방 그런 것을 알 수 있거든"
"내 얼굴에 그것이 쓰여 있어요?"
"그럼."
"우리 백수가 이제 여자 친구를 구했다니까 이제 나도 걱정 하나 덜었네!"
백수의 얼굴에서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듯 여유 있는 표정을 짓는다. 그 어려운 고민 하나를 해결했으니까 말이다. 6학년 선생님 말대로라면 자기가
어른이 될 때 진짜 결혼을 하지 못하면 무척 심각해지리라 고민을 했던 모양이다. 1학기 때 유치반 담임 선생님께서 결혼을 하지 못한 이유도 유치원을
다닐 때 미리 짝지를 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자기 딴엔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가을걷이가 시작되고 높은 산엔 단풍잎이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될 무렵 지리산 밑의 작은 시골 학교에서도 가을 소풍을 갔다. 가까운데 걸어가는 것이
아니고 제법 거리가 먼 뱀사골 골짜기로 학교 버스를 타고 갔다. 유치반 따로 초등학생 따로가 아니라 학생수가 몇 안되니 항상 같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 버스에 다 태우지 못한 아이들은 선생님들의 승용차를 타고 소풍을 갔다.
맑은 계곡 물은 말 그대로 순수함 그 자체였다.
6·25 전적 기념관을 옆으로 하고 계곡을 따라 약간 올라가서 아이들은 여장을 푼다. 넓은 공지가 있었고, 여름이면 이곳은 텐트 장으로 활용되는 데
100여명이 앉아 놀기에는 딱 안성맞춤이었다. 단풍잎의 정취와 계곡 사이로 흐르는 개울물이 서로 어우러져, 가을의 정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산골 촌놈들이 더 깊숙한 산골로 왔는데도 아이들은 그저 흥분하고 좋아라 한다.
"선생님!"
"어, 우리 백수 왠일이지?"
6학년 선생님을 불러 놓고선 백수의 작은 손목이 자기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더니만 삶은 계란 한 개와 삶은 알밤 두 개를 꺼낸다.
"이것 선생님 잡수세요."
"백수가 선생님께 주는 선물이냐?"
6학년 선생님은 계란 껍질을 예쁘게 까더니만 그것을 반으로 나누었다.
"자 이 반쪽은 우리 백수 것, 이 반쪽은 선생님 것."
계란 반쪽을 입 안으로 집어넣고서 우물거리던 6학년 선생님은
"어, 맛이 왜 이래!"
"선생님 맛이 없어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 맛있는 계란을 씹지도 않고 있는 6학년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는 백수의 눈망울에서는 긴장의 눈빛이 서려 있었다.
잠시 후에 선생님은 백수의 양 팔을 덥석 들어 올렸다.
"맛이 없는 게 아니고, 선생님이 여태까지 먹어 본 계란 중에 우리 백수가 갖다 준 계란 맛이 최고여서 그랬어!"
"선생님 정말요?"
6학년 선생님과 유치반의 그 백수와의 웃음소리가 뱀사골의 골짜기 사이로 메아리 되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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