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의 칠선계곡 입구는 시끄러웠다.
벌써 세번에 걸쳐(9년) 칠선계곡 출입 통제에 이어 생태계 보호를 위한 영구히 출입 통제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기에 이에 반발하는 추성리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서 어느 누구라도 부정을 할 사람은 전혀 없을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사안이 엄청난 재앙을 불러오게 했던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가 그 단적인 예이다.
기름 유출이 된 부근의 바다는 물론이고 상당히 넓은 영역까지 바다는 죽어버렸다. 그것이 복원될려고 하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그동안 그 바다에만 의지하고 살아왔던 서해안의 주민들은 삶 그 자체가 막막한 실정이고 보면 환경의 중요성은 우리 인간의 삶과 직결이 된다는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얼마전 조선일보사 주관 일본속 한민족사 탐방의 기회가 있어서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 해 보았는데 일본 전역에 걸쳐 일본속 한민족의 역사 흔적 탐방과 아울러 세계적인 온천 휴양지인 벳부에서 1박을 하게 되었다. 벳부 전역이 온천 단지라 했다. 아니나 다를까 10층의 스기노이 호텔에서 내려다 본 벳부 시내의 하늘은 온통 김이 솟아 오르는 온천의 바다처럼 보였다.
년간 약 3000만명이 벳부를 찾는다는 가이드의 말에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벳부 한 도시에서 벌어들이는 관광 수입은 과연 얼마일까?
그중에서 외국 관광객이 절반이 넘으며 한일 정상회담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한 그런 유명 온천 관광지이며 노천에서 온천수가 끓어 오르는 곳을 멋지게 정비하여 그 자체를 관광 상품화 해 놓은 곳도 있었다. 첨단제품을 가지고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의 이면에는 작은 것을 가지고도 그것을 인간에게 이롬게 하는 일본인들의 지혜를 컨닝해 보기도 했다.
우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동행을 하셨던 단국대 권 교수님께서는 일본속 한민족사 연구를 위해 80년대 초부터 시작하여 벌써 수십차례 일본 방문을 해 보았단다.
80년대 초에 벳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의 벳부에도 온천단지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 온천지역처럼 단순하게 꾸며 놓았는데 2007년도의 벳부는 초라한 관광지역에서 탈피하여 어머어마한 온천의 천국으로 변화됨을 감지하셨다 했다. 일본의 벳부는 엄청난 개발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조화된 개발처럼 보였다. 산을 파괴하고 무질서하게 난 개발을 했다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호텔 주변에는 원시림이 그대로이고 계곡도 자연스럽게 정비되어 있었으며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잘 조화된 그런 온천지역이었다.
개발하면 우리나라는 난 개발이라는 이미지가 떠 오른다.
무질서하게 환경을 파괴해 가면서 오직 한 두사람만의 이익을 위해 개발을 하는 그런 의미의 난 개발의 이미지가 많이 떠 오른다. 그 난 개발로 인하여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 버리는 예를 참 많이도 보아 왔기 때문에 개발이라는 뉴스가 나오면 으레히 환경단체의 반발 뉴스가 등장하고 있다.
환경 보호에 대해서 어느 누가 부정을 할 것인가!
어느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존의 이익을 위한 단체이기에, 우리 인간의 영구적인 복지를 위한 일이기에 그 환경단체를 무시하거나 조롱하지도 않는다. 단지 개발권자와 환경단체간에 충돌 현상만을 수없이 보아 오기도 했다.
주 5일제가 정착되면서부터 산을 찾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불었다. 그중에서도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을 찾는 산악인들이 눈에 띄게 불어나고 있으며 지리산을 주제로 하는 홈페이지, 카페, 블로그도 수를 셀수 없을 정도이며 지리산 매니아가 얼마인지 파악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산을 찾는 산악인들의 수요는 늘어나는 반면에 그 충족을 시켜 주는 산은 한정이 되어 있으며 산을 찾는 사람들의 욕구는 다양한 산길을 걸어 보는 것일게다. 그런 욕구는 계속 늘어 날것이며 그로 인해 산의 환경 파괴는 뻔하게 예상이 되고도 남는다.
칠선계곡은 우리나라 최후의 원시림 지대라고 한다. 지리산 아래에 살았으면서도 아직 칠선계곡엘 한번도 가 보지 못했다. 두지터 위의 계곡까지가 내가 가본 칠선계곡의 전부이다. 칠선계곡은 우리나라 3대 유명 계곡이며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게 원시적인 분위기 때문에 산악인들의 사랑을 한몸네 받는 유명 명소이다.
출입 통제 9년동안 내가 알기만 해도 비공식적으로 칠선계곡을 찾은 산악인들의 인명사고가 참 많이도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칠선계곡 아래에서 살아온 허상옥씨는 119 구조대원이 아닌 산사람 구조대원으로 더 유명하다. 산 아래에서 살아 왔기에 산의 형세나 칠선 계곡 구석구석의 유래나 전설, 역사에 대해서 제법 많이 알고 있는 분이다.
그 사람이 요즘 많이 흥분을 해 있다. 산만 보고 살아 왔는데 산을 막아 놓아 버리니 살길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칠선 계곡의 출입 통제를 풀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2007년도 칠선계곡의 아래는 시끄러운 것이다. 환경단체에서는 그런 추성 사람들의 주장에 발끈 할 것이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한다고 말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호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익만을 위해 이상한 주장을 한다고 말이다.
우리나라 최후의 원시림을 잘 보존하고 지리산 아래 사람들도 만족할 만한 좋은 대안은 없을까? 국립공단 측에서는 그 대안으로 칠선계곡의 일부구간만 허용하고 우회를 해서 천왕봉까지 오르는 방법을 제시햇는데 칠선계곡을 잘 아는 산안인들은 코웃음을 쳤다.
그 구간은 칠선계곡의 진정한 멋을 찾기에는 아주 부족한 코스라 한다. 역시 추성 주민들도 반발을 했다. 여기서 추성 주민들은 추성 주민들만의 대변이 아니라 산을 좋아하는, 칠선계곡을 좋아 하는 산악 매니아들의 의견과 조합된 것이라 봐야 한다.
철저한 통제 지역과 길을 구분하여 칠선계곡을 개방하면 되지 않을까? 백무동 코스외에 모든 지리산 동부지역을 출입 통제 구역으로 묶어 놓으니 지리산 아래에서 자란 내가 고향의 뒷동산에도 못 오를 지경이다. 혹 국립공단 직원에게 들키는 날이면 꼼짝 없이 벌금 50만원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리산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볼때 지리산 아래를 고향으로 둔 한 사람으로서 뿌듯해진다.
예전엔 그 어느 누가 구석진 골짜기에 대해 감탄을 해 주었던가? 그 어느 누가 그곳을 찾아 주었던가?
조선시대때 선인들이 유 목적적으로 지리산을 찾은것 외에 대 규모로 지리산을 찾은 사람들은 6.25로 인해 빨치산과 국군 토벌대였다.
어떤 이유였건 지리산을 찾았던 사람들이다.
숱한 사연을 안고 있는 지리산은 우리 민족의 영산이요 삶의 휴식처이며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고 문학의 고향이기도 했다.
그런 지리산이 아름다움을 잘 간직한 채 많은 사람들로부터 더 사랑을 받는, 자연과 공존하는 지리산이 되기를 바라면서 고향의 산 칠선계곡이 조화롭게 개방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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