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작품

지리산 어귀에서의 작은 사건

배꼽마당 2012. 11. 9. 15:14

                     지리산 어귀에서의 작은 사건

2007년 6월 29일 오후 10:23



1997년도는 개인적으로 진짜로 고향과 인연을 맺었던 해이다. 외지에서 근무를 하다가 지원을 하여 처음으로 고향 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으니 나름대로 감개무량해 했던 해이기도 하였다.

다른 곳도 아닌 고향의 한 면에 있는 휴*학교여서 더더욱 애정이 동하는 곳이기도 했다.

문제는 근무환경이 너무 다르다는데 있었다. 4300명의 규모 학교에서 전교생이 7명인 학교였으니 적응을 하는데 제법 몇달이 걸렸다.

어느 농촌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고향 학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졸업을 하는 학생은 있어도 입학을 하는 학생이 거의 없으니 문제가 심각해지는 현실이었다.

80여년이나 지속되어 온 학교를 내 손으로 폐교를 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되었을 때는 앞이 캄캄해졌다.

안타까운 현실 때문에 말이다.

직업적인 고향 사랑 이전에 당장 직업적인 안타까움이 더했다. 아이 한 사람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새삼 느껴 본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안타까운 심정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2학기 초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유치반 아이 두명이 전학을 온 것이다.

7살짜리 남자 아이 한명과 동생인 5살 여자 아이가 함께 유치반에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의 손목을 잡고 교무실에 들어서는 그 아이들이 너무 예뻐 나는 그들에게 선물 하나를 준비했다.

내가 잘 써 먹는 마술 선물이었다.

서먹하고 낯설어 하는 두 꼬마를 위해 교무실 서랍장에 들어 있던 노끈 뭉치를 꺼내어서 적당한 길이로 잘라 두었다. 가위 하나와 길다란 노끈 하나를 들고 교무실의 쇼파로 접근을 했다.

그때까지도 그 아이들은 멀뚱하고 아주 어색한 눈망울로 나를 치어다 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딱딱한 분위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오신 어머니의 표정 역시 그렇게 밝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무리 시골 분위기가 정서적이고 시적이라 하지만 아이들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시골 학교의 고즈녁함에 짓눌린 듯 했다.

그런 분위기를 읽은 나는 분위기를 바꿀 겸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시골의 좋은 점을 역설하면서 슬슬 작전에 돌입을 하기 시작했다.

" 이 줄을 정확히 절반으로 접어서 나에게 줄래?"

7살 남자아이에게 갑자기 엉뚱한 제안을 했다. 갑자기 무슨일이냐는 표정이었다.

내 손 안에는 그 노끈과 꼭 같은 5cm 길이의 줄이 미리 잘려져 들어 있었다.

그에게서 절반으로 접은 노끈을 왼손 주먹안으로 감취 넣었다. 나머지 노끈의 줄은 손목 아래로 치렁한 상태로 말이다.

" 내가 이 노끈을 잘랐다가 다시 붙여 볼께."

" ? "

미리 손목안에 알맞은 길이로 잘라서 넣어 두었던 노끈을 불끈 쥐고 있는 손목 위로 조금 뽑아 올렸다.

그네들이 보기에는 자기가 반으로 접어서 건넨 그 노끈을 집어 올린것 같이 보였을 게다.

불끈 쥐고 있는 주먹 위로는 약간 위쪽으로 솟아 올린 노끈을 가위로 잘랐다. 또 한번 더 잘랐다. 확실히 잘랐다는 것을 확인 시켜 주기 위해 그네들에게 자른 부분을 재 확인 시키기까지 했다.

그 자른 일부분을 주먹안으로 밀쳐 넣고는 가위를 교무실 한켠에 갖다 두면서 나머지 자른 일부분은 눈치를 채지 못하게 아래로 자연스럽게 떨어트려 버리고는 그네들 앞으로 와서

" 자 지금부터 이것을 붙여 볼 것이다."

노끈을 감싸쥔 왼손의 손목위로 오른손의 손목도 함께 감싸 쥐었다. 그리고는 온갖 힘을 다한다는 얼굴 표정도 함께 연출했다. 악을 쓰는듯, 젖먹던 힘까지 쏟아 내는 듯, 그러면서 자른 노끈 부위를 강력 본드나 기타 접착제 하나 없이 그냥 기 하나로만 붙이기는 무척 어렵다는듯한 판토마임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 조용히 하고 바라 보아야 이 노끈이 붙을 거야,"

" ? "

아이 둘의 눈 빛이 더 동그래져 갔다. 그네들이 더 긴장을 하는듯 했다.

가위로 자른 노끈이 절대로 붙을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까지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후 이상한 주문까지 외워 나갔다.

" 수리수리 수구리 수구리 당당. 노끈아 붙어라 얏! "

주문을 외우고 난 후 7살 남자 아이의 손으로 직접 펴 보이게 했다.

" 아주 조심해서 펴 보아야 한다. 잘못하면 붙은 것이 떨어질 수도 있거던,"

필요 이상의 요구까지 하면서 주먹속에 쥐고 있던 노끈을 살그머니 펴 보게 하였다.

그의 동생이 더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노끈의 접은 부위로 주목을 했다.

" 어 붙었네! 진짜로 붙었네! "

곁에 이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던 엄마도 신기해 했다.

오빠는 노끈을 세게 잡아 당기기도 했다. 붙은 것이 확실한지 재 확인을 하려는듯 또 잡아 당겨 보고 당겨 보기를 여러번, 이번에는 동생이 노끈을 재 확인 한다.

" 햐! 진짜 붙었네. 선생님 마술쟁이예요?"

" 응 "

" 어디서 마술 배웠어요? "

" 지리산에서! "

" 또 한번 더 해 보면 안 돼요?"

" 어렵겠는데. 한번 붙이는데 많은 힘이 들어서 최소한 한시간쯤 힘을 모아야 다시 마술을 할 수 있단다. "

그 두 아이와 첫 대면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시골 학교의 고즈녁함과 썰렁함이 이것으로 해결이 되었다고 단정을 했다. 그네들과의 레포 형성도 함께 이루어 졌다고 단정을 했다.

그 이후에 자주 또 다른 마술 주문이 있었다. 복도에서 지나칠 때마다 마술 주문을 해 왔다. 마술이라고는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노끈 마술 뿐인데 더 이상의 다른 마술은 전무한 상태여서 매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한달 쯤 지난 어느날 조용한 교무실로 유치반 아이 두명이 대뜸 들어 와서는 다른 마술을 보여 달라고 조르기 시작 했다.
매번 실망을 시킨 것도 죄라 싶어서 주머니 속에 있는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라이터의 불을 켜 보이기도 하고 주먹 속에 쥐기도 해 보고, 감추기도 해보고 그 순간 라이터를 호주머니 속으로 살그머니 집어 놓고서는 태연하게 오른 손 주먹을 둥글게 쥐고 있었다.

" 이 라이터 한번 먹어 볼까?"

" 예 "

미리 주머니 속에 넣은 후라 주먹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먹 속에 들어있는 라이터를 잽싸게 입속에 넣는 흉내를 내었다.

그리고는 혀를 볼 한쪽으로 세게 밀면서 라이터를 씹는 흉내를 내었다.

큰 라이터가 입속에 들어가서 씹기가 아주 거북하다는 듯 혀의 끝을 더 불룩하게 한 쪽 볼을 밀어 내면서 입을 다물고는 씹는 흉내를 연출해 내었다.

침을 꼴깍 삼키면서 아주 징그럽다는 그네들의 표정을 읽으면서 이내 꼴깍 삼켰다.

" 햐 ! 진짜루 먹었다. "

입속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듯 입을 벌려 확인까지 시켜준 후 갑자기 배를 움켜 쥐었다.

" 아이구 배야. 아이구,,,,,,"

고통스런 얼굴 표정과 함께 잠시후 나는 교무실의 쇼파 위에 벌렁 드러 누웠다.

숨을 억지로 참으면서 더 이상의 동작은 하지 않았다.

" 어 . 선생님이 죽었다! "

오빠와 여동생은 나의 코 가까이 손가락을 대어 보는 행동까지 했다. 그 순간에는 숨을 멈추었다.

" 진짜로 죽었다 ! "

순간 여동생의 손바닥이 내 뺨위로 찰싹 갈겨졌다. 7살짜리 오빠의 손바닥도 아까보다는 더 힘있게 갈겨졌다.

내 빰이 얼얼해졌다.

잠시후에 동생의 손바닥이 조금 전보다는 더 힘이 실려 찰싹 갈겨졌다.

손바닥의 맛이 얼얼할 정도로 조금전 보다는 많은 힘이 실린 탓에 뺨이 더 얼얼 해졌다.

더 죽어 있다가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까 보아 번쩍 눈을 떴다. 뺨이 아픈것과 함께 끼고 있는 안경까지 깨어질까 봐 살아나 주기로 한 것이다.

" 아 시원하다. "

그네들의 안타까움을 해결해 주어야 겠다는 취지에서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살그머니 입속에 넣고서는 힘들게 입속에서 빼어 내는 시늉을 했다.

그 두 아이는 비로소 안심이 되는 듯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그 이후로는 마술을 해 달라고 조르는 일은 없었으나 나의 별명은 라이터 선생님으로 통했고, 다른 형태의 놀이 친구로 더 잘 통했다.

두 유치반 아이의 등장으로 학교는 제법 그럴듯 했으나 1년후엔 그 아이도 다시 전학을 가야 했고 80년을 자랑하던 그 학교는 다음해 2월에 도 교육청의 1면 1교 주의 원칙에 따라 폐교를 해야만 했으며 적막하고 쓸쓸함만이 학교 주변을 감돌기만 했다



( * 1978년 세계편지쓰기 1등을 했던 유미경씨가 졸업을 한 학교였으며 1998년 2월엔 결국 그 학교는 폐교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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