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작품

어느 이상한 나라에서

배꼽마당 2012. 11. 9. 15:08

                        어느 이상한 나라에서

 

2006년 9월 26일 오후 9:50

 

그녀는 꿈을 있다고 생각했다. 몽롱하고 어지러운 증세가 마치 꿈속에서 가위눌림을 당해 몹시나 꿈자리 사나운 그런 느낌이 제법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으레히 그랬듯이 그녀는 빨리 일어나서 오늘의 스케줄에 따라서 동창회 모임, 바자회 참석, 관내의 행세깨나 하는 사모님들과의 점심 약속 등등 하루의 일과를 위해 바삐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후 4시엔 콘도 건립을 위한 기초 조사를 위해 제주도 행 비행기를 타야한다는 기억들이 그녀의 뇌리에 꽉 차 있다. 본능적으로 오늘도 바쁜 일과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식 때문에 고단한 몸을 일으키려고 무진 애를 써보았다. 목이 몹시 마르기까지 했다. 전날 과음을 한 기억이 없었는데도…….

'그런데 왜 이리 목이 많이 탈까?'

그녀는 그냥 지친 채로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 언저리 사이로 야자나무 잎사귀가 아른거렸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나른해지는 마음에 일순간 행복해지기까지 했다. 모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꿈도 아닌 것 같은데 몸의 끈적함과 소금기가 엉긴 몸의 구석구석에서 찐한 해초냄새와 알 수 없는 악취가 풍기고 있지 않는가! 의식이 점차 들기 시작했을 땐, 지금의 그녀 자신에게 문제가 심상치 않음을 한참만에야 알았다.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 앉았을 땐, 아뿔싸 이게 왠 날벼락인가! 그녀는 자신의 별장이 아닌 무인도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공중에서 추락하는 비행기 안의 아수라장과, 울부짖는 비명소리, 두동강난 비행기의 동체 사이로 무의식적으로 구명 조끼를 입고 탈출을 시도했던 기억들이 조금씩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비행기 사고였어. 그러면 나는 살아 난건가?'

바싹 마른 입술을 만져 보았다. 죽은 송장처럼 파리해진 자신의 얼굴을 매만져 보았다. 살아 있다는 사실에 신에게 감사해야 할지 아직까지는 분간이 되질 않았다.

섬 어귀의 바위 틈에서 새어나오는 물로 갈증과 허기를 채운 그녀는 다시 정확한 사태 파악을 위해 자신의 현재 상황과 주변의 동향을 인지해야 함을 느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살아나기 위해선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기사, 자신의 여태까지 삶은 부귀 그 자체였지 않았는가! 친정쪽의 든든한 정치적 배경을 바탕으로 그녀는 노른자위 땅을 남보다 빠르게 그것도 손쉽게 탐닉할 수 있지 않았는가! 그것을 밑천으로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손댈 수 있었고, 법적인 문제점이 야기되어도 뒤의 든든한 배경 덕분에 적당히 얼버무려 수월케 넘어갈 수 있었으며, 언제나 귀한 마나님 행세와 완벽한 여성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그녀의 여태까지 삶의 영역은 완전함에 가까운 것들이었으며, 이세상의 존재란 오직 그녀만은 위해서 창조된 듯한, 다시 말해 고생이라는 낱말의 의미와 서민의 애환을 전혀 이해할 줄 모르는 그런 부류의 현대적 여인이었다.

자신의 위치에 걸맞게 돈의 액수로 가치 판단을 하고, 특히 귀하고 값나가는 것은 꼭 손에 쥐고야 마는 성격은 과히 광적이라 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어릴 적에 철학관의 도사로부터 자신의 얼굴이 원숭이 상이라고 해서 돈방석 위에서 항상 굴릴 거라는 예언에 자못 흥분하기도 했던 그녀는, 훗날 얼굴 부위별로 유명 탈렌트를 닮은 성형수술의 덕분으로 뭇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미인이란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항상 자신이 최고가 되어야 했으며, 그녀는 병적인 공주병 그 이상이었다.

그런 그녀가 구사일생으로 남태평양 어느 무인도에 로빈손 크루소가 된 것이다. 로빈손 크루소와 다른점이 있다면, 배의 난파와 비행기의 추락사고, 남자였다는 점과 여자라는 점, 또 하나는 로빈손 크루소는 원시적 도구 몇 점이 있었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유럽의 중세 귀족들이 소유했음직한 값비싼 목걸이 하나를 목에 걸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목걸이 하나의 가격으로 전국 고아원 1년 분 양식이 넉넉히 되고도 남음직한 그런 귀한 물건이었다.

하루를 지내고, 물로만 허기와 갈증을 채웠던 그녀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무엇인가 구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였는지 바닷가의 인근 주위를 서성거려 보았다.

소설속에서는 주인공이 무인도에 닿아, 낚시라든가, 아니면 야생 열매로 손쉽게 살아갈 수 있다고 씌여져 있었고, 나중엔 꼭 구출이 되는 거였는데, 아무리 사방을 살펴보아도 그섬엔 먹을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어 보였다. 바닷가엔 그 흔하던 조개라던가, 게 종류등이 많을 법도 한데 그 섬 주변은 도대체 그런 것들이 하나도 눈에 뜨이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확실히 그랬다.

그녀가 있는 곳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 이상이었다.

섬 주변엔 야자수 나무와 열대 우림 지역에서 흔히 볼수 있는 밀림과 바위 투성이만이 눈에 유난히 띌 뿐, 적막함과 고요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주변을 감싸 안고 있었다.

'나는 살아난거야! 다른 사람은 모두 다 죽고 나만 살아 난거야!'

그녀는 완연한 정상 상태로 되돌아 온 듯 했다. 자신만이 신에게 선택되어졌다는 짜릿한 기쁨은 가슴이 벅차 오르도록 그녀를 흥분하게 하는 사실이었다.

'신은 나를 저버리지 않았어. 곧 구조대가 도착하겠지! 그때까지만 잠시 휴식을 취할 겸 이 섬에서 버텨 보는거지 뭐. 그래 난 오랜만에 휴가를 떠나 온 거야!'

불안과 초조감으로 얼룩진 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추스리며, 만족해 하기로 마음을 굳혀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몇일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배가 꼬륵거리고 목이 마를 땐 물로만 허기를 채웠는데, 주변을 둘로 보아도 먹을 것이라곤 그녀를 위해 예쁘게 존재해 주지 않았다.

궁할땐 항상 그녀에게 행운이 따라 주었는데 먹을 것이 어떻게 구해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시간을 메우고 있었다. 고대 소설 속에서도 항상 그랬듯이 산신령의 도움이 있다든가, 물속에 빠진 사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 난다든가, 어느날 갑자기 횡재를 해서 운명이 바뀌는 그런 상황이 앞으로의 자신에게도 일어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까지 갖기 시작했다.

'나는 불사신이야! 확실히 난 행운을 달고 다니는 여신일수도 있어'

약간 흥분해 하면서 혼자 넋두리로 읊조리며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문제는 그런 기적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이가 없었다. 고급스럽다던가 세련되었다고 감탄을 해 주거나 불쌍하다고 탄식해 주는 그 어떤 사람도 없었다. 순간 고독과 허무와 절망의 공포가 그녀의 머리를 망치질했다.

'이 섬이 무인도란 말인가? 왜이리 조용하지?'

바닷가엔 그 흔한 바닷새, 갈매기 등등 어떤 짐승도 눈에 띄질 않았다. 지금의 고독을 채워줄 그 무엇인가가 필요한데, 지금의 그녀 주변엔 새소리라던가 짐승의 소리같은 그 무엇이 필요해졌고 일종의 그리움 같은 것이 그녀의 감정세포를 울렁이게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아무 것도 그녀를 위해 존재하질 않는 것이다. 자신에게 욕설을 해주는 사람이 그립기도 했다. 그 호화 찬란했던 엊그제의 자신의 모습이 무척 부러워졌다.
허무와 절망적인 감정이 극에 달한 듯 이내 그녀의 눈 언저리엔 눈물이 맺히기까지 했다.

'구조대가 곧 오겠지. 암! 꼭 오고 말고!'

며칠동안 그녀는 물로만 허기를 채웠다. 정말로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었던가!
그 고지식하고 도도했던, 그러면서 자신보다 위치가 낮다 싶으면 냉소와 경멸의 시각으로 일관해왔던 그녀였었는데 …….

그녀는 배고픔의 고통과 탈진 때문이었을까! 미친 듯 한나절 내내 숲 속을 뒤져서 쥐 한 마리를 잡고서는 신에게 경건하게 감사해했다. 예전에는 쥐에 대하여 혐오감을 그렇게나 강하게 갖고 있던 그녀였건만 지금은 자신의 허기를 채워줄 고급 단백질 음식이었다. 아니 목숨을 연명해 주는 고귀한, 구세주보다 더 귀한 존재였다.

그녀는 무인도의 생활에 약간 익숙해질 무렵엔 그 주변을 탐색하기로 작정하고 길을 나서 보았다. 항상 생활 자체가 물질을 탐닉하던 그 매섭고 예리하며 딴엔 통찰력 잇는 시각의 소유자가 아니었던가! 돈이 될만한 곳이면, 투자가치가 있다 싶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주물럭거리던 그런 위대한 경제적 전문가가 아니었던가!

"이럴 수가! 아니 이럴 수가!"

섬주변을 탐색하던 그녀의 눈이 마치 왕방울 만한 송아지의 눈망울이 되어 버린 것은 햇빛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광채를 발견하고서였다.

"아니 이럴수가! 신이여! 저에게 또한번의 행운을 가져다 주셨나이다!"

그녀는 가슴이 벅차 오르는 감격에 겨워 눈물까지 흘렸다.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바위 속에 박혀 있던 다이아몬드 잔해들이 땅바닥에 수없이 나뒹구는 다이아몬드 노다지를 발견한 것이다. 또 하나의 기적이랄 수 있었다. 기적이라기보다 차라리 천운이라 할 수 있었다.

집채만한 바위는 온통 다이아몬드로 콱 박혀있어 전문적인 채굴장비만 갖춘다면 세계의 보석시장을 휘어잡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일단 내가 구조만 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획득하는 거야. 아무런 법적인 문제가 없게 국제 변호사인 정호일 박사에게 의뢰하면 되겠지! 그 다음엔 이섬을 내 소유로 만드는 거야. 어쨌거나 이 섬은 여태껏 어느 누구도 손대지 않은 무인도였으니까 문제 제기를 하는 작자는 없겠지!'

며칠을 두고 그녀는 나무 껍질를 이용해 우선 굵고 품질이 좋은 다이아몬드 타래를 만들어 나갔다. 구조가 될 때면 바삐 가져갈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지만 시간의 무료함 때문이기도 했다.

"이 다이아몬드 하나면 작은 중소기업 하나쯤 죽였다 살렸다 할 수 있을거야! 두고 보라지. 요놈들."

마치 여태까지 맺힌 한이 무척 많았는 듯, 설움이 북받치는 듯,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던 존재들에게 복수를 하기라도 할 것처럼 광기 어린 눈빛까지 번뜩이며 독백을 하고 있었다.
근 한 달이 지나도 구조대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망망한 바닷가엔 흔한 파도하나 치질 않고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그녀는 조금씩 동요하기 시작했다. 고함을 치기도 해 보았고 엮어놓았던 다이아몬드는 무한정 있으니까 아까울 문제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심한 허탈과 무력감에 일종의 보상 심리인지도 몰랐다.

'아! 내가 구조만 된다면……! 구조만 된다면……!'

양반 상놈이 존재했던 조선시대의 사회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그 당시는 양반의 경제적, 문화적 위치가 지금의 하류층보다 못했으리라 상상해 보았다.

'그땐 흔한 텔레비전, 에어컨, 자동차 등등이 없었으니까 생활 그 자체는 형편 없었던거야!'
그런데 그 당시 그들은 어떻게 상류층으로 존립할 수 있었을까?
바로 그거야!

자신들을 떠받들고, 항상 존경어린 눈빛으로 절대 복종해 주는 상놈이란 존재 때문에 튀는 맛으로 귀족의 짜릿한 맛과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항상 승리자인양 형이상학적으로 만끽했던 게지. 가소로운 것들!'

그녀는 혼자서 흥분해 했다. 누군가가 현재의 그녀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정신이상 상태라고 쉽게 결론지을 법한 그런 표정이었다.

구조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참으로 가슴 벅찬 상상이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언론 매체에서 자신의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기사화 할 것이다. 수기도 한편 써야되는데, 근세기들어 보기 드물게 받아 낼 비싼 원고료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까지 하기도 했다.

오랜 무인도의 생활에 그녀는 많이 지쳐가고 있었다.
고급옷감과 유명 디자이너가 제작한 값비싼 자신의 옷가지들은 이제 하잘 것 없는 걸레조각에 지나지 않음을 느낀 그녀는 차라리 알몸으로 지내기로 작정했다.

아무로 보아주는 사람이 없는데, 젖가슴이 드러나는 나신이 되어도 조금도 부끄러울 게 없지 않는가 말이다.
표피적 요소의 탐닉에만 몰두해왔던 자신이 무척 메스꺼워졌고 가소로움마저 함께 느끼고 있었다.
끈적끈적한 바닷물이 배인 자신의 옷가지들은 차라리 누더기보다 못한 거였다. 알몸 자체가 얼마나 편하냔 말이다.


'선사 시대의 원시인들은 참 편했을거야!'

그녀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타래로 엮어 두었던 다이아몬드를 바닷물에 하나씩 하나씩 던져갔다.
황금 노다지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느꼈다.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최고급 목걸이도 그저 하잘 것 없는 쇳조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뜨거운 열기에 데워진 살갗을 귀찮게 하는 군더더기 소유물처럼 느껴졌다.

이제사 무소유의 철학을 깨우친 듯 그렇게나 애지중지했던 목걸이를 바닷물 한가운데로 휙 던져버렸다.
몹시 개운하고 홀가분함을 느꼈다. 그 많은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이제 그녀의 몸뚱아리에 남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동안 값비싼 돈과 꽤나 시간을 투자하여 열심히 가꾼 몸매가 더 부끄럽기까지 했다.

저 광채 나는 다이아몬드 광산이 이 순간에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한낱 작은 돌멩이에 불과한 것이다.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어야 그것은 경제적 가치를 발휘한다는 것과, 그 비싸고 멋있었던 옷가지들도 남이 감탄해 하고 감동을 해 주어야 멋이라는 것이 생겨난다는 것 하며,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 있어야 우월 의식을 만끽한다는 사실들이 지금의 그녀를 무척 슬프게 하고 있었다.

'나를 구조해 주는 맨 처음의 사람에게 내가 아끼는 다이아몬드 하나를 선물할꺼야! 꼭 할거야!'

이내 그녀는 결심 하나를 바꾸고 말았다.

'아니 나만 구조해 준다면 그 훌륭한 분에게 이 다이아몬드 광산 전체를 기증할거야!'

수평선 저 너머에선, 목이타도록, 애간장이 다 타도록 그리움을 갈망하는 그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원의 기미는 요원해 보였다.

"지나가는 고기배 한척이라도 좋으니 제발 살아있는 무엇이 눈띄어다오."

그녀는 울부짖으며, 또 울부짖으며, 바닷가의 모래 사장위에 나뒹굴어보기도 하고 야자수 나무위에 오르락 거리며 고함을 치면서 미친 듯 해도, 그녀의 주변에선 그 어떤 것들도 반응해 주질 않았다.

자신을 조롱하며 많이 비웃어 주는 사람, 그러면서 자신에게 심하게 욕설을 퍼 부어줄 불한당 대여섯 명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길거리에 나돌아다니는 깡패라도 좋았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예전과는 너무도 달라져 있음에 약간 혼돈스러웠다.
'참, 내 마음이 많이 사치스러웠지!'
뜨거운 여름날 아파트 공사를 한답시고 구슬땀을 뻘뻘 흘리던 공사판 인부를 보고 불쌍하다는 동정과 경멸의 냉소를 던졌던 자신이 아니던가!
새벽 이슬을 밟으며 길거리를 비질하던 환경미화원의 모습을 보고서는

"어찌 사람이 저런 일을 할 수 있어!"

조롱하듯 먼지가 날리는 곳에 침을 택 뱉으면서 고급 외제 승용차의 도어를 닫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고아원이나 경로당에 불우 이웃돕기를 한답시고 비서를 시켜 부피 많은 물품 몇점을 던져놓고 자신은 사진기자 앞에서 연민 어린 미소와 함께 멋들어지게 찍으라고 기자들을 다그쳤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조롱하고 냉소했던 그들의 존재가 너무도 너무도 부럽게만 생각 되어졌다.
배고픔보다 지금의 그녀를 더 고달프게 하는 것은 고독이었다. 너무나 심한 고독…….
그녀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해오고, 무엇인가 자신의 목을 꽉 조르는 듯한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저주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나 어렵게 잡아놓은 방울뱀을 구워 먹어야겠는데 아무런 의욕이 나질 않았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꼭 살아나는데……!"

자신은 지금 영화속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또 기적을 만드는 불사신이라고 생각을 했다. 목이 몹시 타는데 샘물까지 다가갈 기력마저도 없었고, 그럴 때마다 어렸을 적에 본 슈퍼맨이 나타날 거란 강한 기대까지 해 보았다.
시장의 어느 모퉁이 난전에서 구릿빛 얼굴을 하고 멸치 젓갈을 팔던 어느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막내아들의 책값이라도 벌겠다던 그 할머니의 꿈이 바로 황금 다이아몬드였다고 그녀는 되 뇌였다.

'나는 불사신인데……. 기절을 하고 있으면 어느 누군가에 의해 구조가 되어 나는 병원에 누워 있고 많은 기자들이 서로 인터뷰를 하자고 취재 경쟁을 벌이겠지! 그러면 예쁜 간호원들은 지금은 절대 면회 사절이라면서 기자들을 밀쳐 버릴테고…….
아마 병원의 특실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권위 있는 박사가 나를 직접 특진할거야! 짜식, 원님덕에 나팔 분다고 자기도 카메라의 세례에 얼굴이 많이 팔려지겠지! 나를 진찰하는 그 의사도 영광일거야!'

그녀의 눈자위는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 뜨거운 바닷가의 모래밭 한가운데서 발가벗은 여체의 나신은 새까맣게 타고 있었다.

이내 가느다란 숨소리마저 끝내 멈추고 말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국내의 신문마다 이런 기사가 실렸다.


'비행기 추락사고 126명 사망. 1명 실종. 한달동안 사고 주변을 샅샅히 수색했으나 1구의 시신은 끝내 못찾고 구조대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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