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 가치를 화장시키기 위해 서편 베란다 문을 열었다. 남쪽이지만 음력 동짓달은 무척 차가웠다.
동짓달 상현달이 서쪽 하늘에 얼어 있었다. 동짓달 그믐날이 가까운, 음력으로 한해가 저물어 가는
엄동 설한의 기운 저녁달은 어쩐지 쓸쓸해 보이고 황량하기만 했다. 겨울은 언제나 춥고 외롭고
썰렁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찬 한겨울에 저 상현달은 얼마나 추울까! 솜이불로 포옥 감싸 주어야 한다는 피터팬 마음이
한참이나 동했다.저렇게 찬 한겨울날 호롱불로 만든 등불을 들고 어머니와 함께 이웃 마을
(기암터에서 평촌으로) 로 자주 가야 했던 기억과 맞물렸다.전화가 없던 시절이었으며, 밝게 빛나는
후렛쉬마져 귀했던 시절이었으니까 지리산 아래에선 밤 마실을 나갈 때마다 등불이 아주
요긴하게 이용되었다. 육면체로 만들어진 등물의 옆면은 유리가 끼워져 있었고 혹 가다가 유리가 깨어지면
그 부분은 창호지로 발라 바람으로 인해 호롱불이 꺼지지 않게 한 그런 등불이었다.
한겨울에도 일거리가 많았기에 놉(일꾼)을 구하기 위해서 이웃마을까지
어머니와 함께 꼭 가야했다.
지리산둘레길이 개설되어 있고, 새마을운동 이후에 집 까지 자동차가 들락거릴 수 있는 현재의 시골
현실과는 아주 다르게 이웃마을 까지 가는 길은 구불구불 했고 오르막 내리막이 함께 뒤섞인 좁은 오솔길이었다
캄캄한 한 밤중에 불빛이 없으면 전혀 길을 걸을 수 없었다. 요즘처럼 환한 가로등 역시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며, 그런 시골 길을 한밤중에 나다니기에 아주 힘이 들었던 것은 귀신의 존재 때문이었다.
혼자 나다니기가 아주 무서웠었다. 한겨울에도 닥 껍질 벗기기, 무명 실 잣기등 우리집은 언제나
숙련된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런 일꾼을 구하기 위해선 밤 마실을 통해야만 가능했다.
낮에는 사람들이 일 하러 나갔기 때문이었으며 길 모퉁이를 돌때마다 나뭇잎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큰 나무가 세찬 바람에 휘휘 거리는 소리, 두툼하게 동여 매어 놓은 나뭇단사이로 바람이 새는
소리등등이 만들어 내는 겨울 밤의 풍경은 귀신의 소리 자체였다.
옛날 지리산 아래는 그런 귀신이 참 많았다. 누구네 아이가 죽어 애장(돌멩이로 무덤처럼 만들어 놓은
아기 무덤) 근처를 지날때면 머리카락이 쭈뼜했고, 며칠전에 목격했던 산 짐승(오소리. 족제비, 삵)이
금세 튀어 나올 것 같은 그런 길로 가야만 했다. 누구네아버지가 화계장에 갔다가 술에 취해 밤 늦게
혼자 오다가 귀신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들도 당시엔 사실로 인지되었으며, 지리산 귀신은 언제나 존재한다고
믿었기에 밤길을 다닌다는 것은 참으로 용기가 필요했고 혼자서는 절대 나다닐 수 없는 분위기의 그런
길로 자주 다녀야 했다. 물론 어머니와 함께 말이다.
거대한 밤나무 몸통이 오래된 탓에 가지가 부러지고 가운데 부분은 썩어가고 있는데 이것 또한 낮엔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귀신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은곳이었다.
강 어귀에 감나무 고목이 앙상한 둥치만 남아 있었는데 이 또한 밤이 되면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그 속에
귀신이 살기 좋아 보엿으며 어린 나의 눈엔 귀신이 출몰하는 곳으로 단정했다. 밤길을 가다보면 등골이
오싹해짐을 자주 느꼈는데 참 무섭기도 했다. 가장 무서웠던 곳은 뒷동산 의 어귀에 돌멩이로 뭍혀있는 빨치산
무덤이 있는 곳을 지날 때였다.
겨울이 오고 으스스한 찬 겨울 바람이 불때면 옛날의 그런 귀신 생각을 많이 한다. 그 귀신들은 고향의 혼이 되었고
이제는 따스한 흔적이 되었고 그리움의 한편이 되어 갔다. 가끔 고향엘 들릴 때면 무서워 했던 그곳을 들려 보는데
옛날의 흔적들이나 귀신이 많이 살법한 곳은 없어졌다. 고목 나무도 없어져 버렸고 구불구불하고 좁은
오솔길도 없어졌고 음산한 곳에는 밝은 가로등이 길을 비춰대고 있기에 옛날의 귀신은 몽땅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밤길 마실을 다녔던 그 길로 요즘은 승용차로 다니기에 옛날의 귀신들이 내
생각속에 파고 들어 올 여지가 몽땅 사라져 버렸다.
수많은 귀신들에 대한 기억들이 겨울철에 갑자기 기억의 이편으로 몰고 온다.겨울밤에 먹던 홍시, 곶감, 잘 말려진
감껍질, 감 말랭이, 얼린 고구마 깎아 먹기등은 겨울철의 멋진 간식거리였다. 그런 겨울이 지금계속되고 있다.
내일이면 고향쪽에 눈이 내린다는 기상예보가 있었다. 겨울은 추워야 했다. 아주 추워야 했다.
그래야만 엄천강이 얼고 우리들의 멋진 놀이터가 만들어지니까 말이다. 강물이 꽁꽁 얼어버리기를 참으로
많이 기도했던 어린 시절이이런 겨울에 또 나를 아련하게 만들어 댄다.
겨울과 귀신, 엄천강의 얼음, 어머니와 함께 밤마실 나가기, 겨울철에 먹었던 맛이었던 간식등이 자꾸
나를 옛날 속으로 몰아 댄다. 아파트 바깥에서 휘휘거리며 불어대는 한겨울이면 옛날이 자주 그리워진다.
'◆살며 생각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을 측정하는 다섯 가지 기준 (0) | 2012.11.08 |
---|---|
잊혀지는 고향의 옛 지명 (0) | 2012.11.08 |
엄천골짜기의 찬 바람 (0) | 2012.11.08 |
겨울과 장작난로 (0) | 2012.11.08 |
초식학생 (0) | 2012.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