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금탄 전설의 주인공 이억년선생 묘비제막식 |
|
|
| | |
(이억년 선생의 묘소단장 준공및 묘비 제막식 광경)
2006년 12월 4일 12:00에 경남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뒷산에서 투금탄 전설로 유명한 일화를 남긴 이억년 묘소 정화작업과 새 묘비 제막식이 전국의 성주이씨 문중(회장 이시욱)을 비롯하여 김성진 함양문화원장, 함양군 군의회 회장 부회장, 강명구 휴천면장, 함양 유림회, 군청 관계자및 지역주민 약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행사를 가졌다.
고려말 성주이씨 문중의 5형제(이백년, 천년, 만년, 억년, 조년) 모두가 과거에 급제를 하여 정치에 입문을 한 문중으로 이 다섯 형제중 첫째인 이백년 선생과 넷째인 이억년 선생이 고려말 무신정치의 혼란함과 원나라의 내정간섭등으로 인하여 환멸을 느낀 두 형제가 벼슬을 버리고 지리산 어귀인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에 은둔 생활을 하게 되었다.
투금탄 전설이란 성주이씨 다섯 형제중 이억년, 이조년 두 형제가 길을 가다가 금덩이 두개를 줍게 되고 동생인 이조년이 강을 건너던 중 배위에서 강물에 금덩이를 버리게 되고 이에 깜짝 놀란 형 이억년이 그 연유를 묻자 동생 이조년이 금덩이를 소유한 이후 형이 이 자리에 없었더라면 두개의 금덩이가 자신의 소유가 되었을 것이란 안타까움에 형에 대한 미움이 앞서기에 사악한 존재물이라고 여겨 강에 던졌노라고 하자 형인 이억년 역시 자신도 꼭 같았음을 시인하고 형 역시 강물에 금덩이를 던진 투금탄 전설( 서울 강서구 구암 공원)로 유명한 주인공 이억년과 이조년 사이에서 탄생한 일화를 말한다.
이 투금탄 전설은 고려사절요, 동국여지승람, 양천읍지등에 기록되어 있으며 아주 오래전부터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현재에는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말하기.듣기 국정교과서에 두형제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실려 있기도 한데 800년동안 지리산 어귀에 방치된 채로 있던 묘소를 성주이씨 문중에서 대대적인 정화작업을 시행하였고 정확한 고증을 거쳐 묘비 제막식을 동시에 거행하게 된 것이다.
함양군 병곡면에 송호서원이 있는데 이는 다섯 형제중 이만년 선생의 후손이신 조선시대 이지활 선생이 세조의 왕위 찬탈에 격분하여 벼슬을 버리고 거창에서 은거하다가 함양군 병곡에 와서 살았으며 송호서원에 배향되어 있고 함양 상림 인물공원에 이지활 선생의 흉상이 건립되어 있기도 한데 이를 보면 함양과 성주이씨 문중과는 아주 깊은 인연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 증거라 할 수 있겠다.
물질 문화에 익숙해져 버린 요즘 도덕적인 해이와 인간성의 상실, 모든 것을 물질적인 관점에서 계량화하고 그에 예속되어 가는듯한 사회적인 이면에는 황폐해져 가는 인간성 상실의 분위기가 많이 노출되어지는 요즘 두 형제가 보여준 인간 사랑의 실천적 행위는 거룩한 정신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리산 어귀로 은둔 생활을 하며 도정정사를 짓고 형인 이백년 선생과 함께 후학을 양성하였던 그 고고함과 유유자적한 선비 정신, 황금보다도 인간 사랑을 선택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후세에도 그 정신과 혼을 이어가야 하며 이는 훈계나 설교같은 열마디의 말보다 현장 체험을 통한 묵시적인 교육의 장으로 그 기틀이 되기를 희망하는 바이며, 새 묘비문 제막과 아울러 전국민들의 정신 교육의 장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도 하다. |
*위의 사진은 우리 고향에 묻혀져 있는 아주 귀중한 역사적인 자료이며 제가 2006년 12월에 거행된 묘비 제막식에 직접 참석하여 찍은 것입니다.
묘소는 옛 문정초등학교 뒷산이며 도로에서도 빤히 보이는 곳이며 지니치다가 예사로 스치지 말고 한번쯤 다녀가 보시는것이 좋겠네요.
위의 내용은 현재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말하기.듣기(국어) 38-39쪽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의 주인공 묘소입니다. |
출처 : 화남초등학교 총동창회(경남 함양 유림)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