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고향자료

[스크랩] 투금탄 전설과 휴천면 백연마을, 문정의 이억년선생 묘소

배꼽마당 2012. 11. 4. 11:27

함양군 휴천면 문정에는 백연마을이 있다. 또 옛 문정초등학교 바로 뒷산에는 아주 오래된 묘소 하나가 있다. 700여년이란 세월속에 그동안 묻혀져 오다가 최근에 이 묘소의 종중에서  성역화 작업을 마치고 새 단장을 해 놓았으며 묘비도 새롭게 세워 놓았다.

 

바로 성주이씨 집안과 관련이 있는 묘이며 백연마을도 성주이씨 집안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개인 문중의 이야기라기 보다 오히려 고향의 아름다운 역사이며 고향사람이라면 꼭 인지를 할 필요가 있는 독특한 사연이 있는 곳이며 그 연유를 정리하여 많은 분들께 알리고자 한다.

 

 

개성유수 이억년이 벼슬을 버리고 경상남도 함양으로 들어가게 되자, 그의 동생 이조년은 한강 나루 건너까지 배웅차 두 사람이 길을 떠나게 된다.
여기서 개성유수라 함은 당시의 수도가 개성이었으며 수도를 총괄하는 직책이었으므로 요즘의 서울특별시장급이다.

그리하여 도중에서 금 두뭉치가 땅에 떨어져 있어 이를 주워서 두 형제가 한 뭉치씩 나누어 가진다. 그리고 당시 양천(김포군내)강 나룻터 양화도(현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구암공원안에 당시 나룻터 현장이 있음)에서 배를 타고 건너게 된다.
배가 중간에 이르렀을때 아우인 이조년이 주운 금 뭉치를 강물에 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형인 이억년이 그 연유를 물으니 아우가 대답 하기를

"저는 평소에 형님을 공경 하는 마음이 깊었는데, 황금 뭉치를 주어서 둘이 나
누어 가진 순간부터 홀연히 시기하는 싹이 틈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는 황금
이란 즉 착하지 못한 물건이기 때문으로 생각되어 강물에 던져 버렸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형님인 이억년이
"너의 말은 참이로구나, 나 또한 같은 감정을 느꼈도다."
하며 그 또한 가졌던 황금 뭉치를 강물에 던져 버렸습니다.

이 일화는 [고려사 절요],[고려사 열전],[양천읍지],[동국여지승람]등에 실려 전해지고 있는데, 그 연대는 대략 고려 충렬왕 20년(1294년)경이며 그 이후 이 나루터 강을 투금강(투금강)또는 투금탄(탄,여울)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서울 강서구 가양동 구암공원내에 당시의 나룻터를 나타내는 표지와 함께 공원 안내문 가운데 고려 중,말기의 명사인 이조년, 이억년 형제간의 고사라고 밝힌 투금탄의 전설과 함께 있는 것이다.

이 두형제의 이야기와 지리산과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

이억년이 어수선한 정치 세계가 싫어 지리산으로 갈려고 할 때 동생 이조년이 배웅을 하게되고 이때 생겨난 투금강 일화가 생겨난 것으로 추측된다.
후에 이억년은 지리산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정확한 위치를 표현하면 경남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도정마을이 된다.

이들 형제중 이억년은 그의 형님인 이백년과 지리산에서 은둔 생활을 하게 되는데 맏형이었던 이백년의 이름에 유래되어서 현재 마을 이름이 백연마을이 되었으며 이억년의 묘소는 백연 마을과 가까운 문정 마을의 뒷산의 양지 바른곳에 모셔져 있다.

성주이씨 이백년(첫째), 이억년(넷째) 형제가 함양군 휴천면 문정에 와서 살았다는 증거는 지금까지 현존하는 함양군 휴천면 백연마을(이백년)과 도정정사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다는 도정마을(문정리)이 있으며 이억년 묘소가 문정마을 바로 뒷산에 있기 때문에 지명의 유래와 묘소가 그 증거가 된 셈이다.

이백년, 이억년 형제가 지리산에 은둔 생활을 하게 된 셈이다.

함양의 지명 책자에도 언급이 되어 있고, 마을 이름이 백연이며, 문정 마을 뒷산에 이억년의 묘소와 함께 있고 이억년이가 도정정사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다는 도정마을이 문정리에 있으며 억년바위 등이 그 실체를 말해주고 있으며 이것은 막연한 전설이 아닌 실존의 사실로 인지 될 수밖에 없다.

이들 형제를 살펴보면 밀직사사 이백년(李百年), 참지정사 이천년(李千年), 낭장 이만년(李萬年), 참찬 이억년(李億年), 정당문학 이조년(李兆年) 모두 다섯 형제가 되는데 이들중 이백년, 이억년이 고려때 이 지리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아울러 이조년의 그 유명한 시조도 함께 나열해 본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말하기.듣기) 교과서 38-39쪽에 이 내용을 소재로 두형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약간 각색을 하였지만 근본은 꼭 같다.
이는 학생들로 하여금 황금덩이 대신 형재사랑을 택한 두 형제의 이야기를 듣고 물음에 답을 하도록 교과서가 구성되어 있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말하기 듣기 주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면

(금을 버린 형과 아우) - 교사용 지도서에 게재된 듣기 자료 내용

옛날 어느 마을에 의좋은 형제가 살았습니다. 어느날, 아우가 강바닥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금덩이 두개를 발견했습니다. 아우는 금덩이 얼른 건져 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한개를 형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리를 어느 정도 건넜을 때, 갑자기 아우가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 버렸습니다. 형은 깜짝 놀라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 저는 평소에 형님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매우 두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금덩이 하나를 형님께 드리고 나니 자꾸 형님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어요?"
이 말을 듣고 형도 가지고 있던 금덩이를 꺼내 강물에 던져 버렸습니다.

이상이 국정교과서인 3학년 1학기 말하기.듣기 교과서에 실린 주 내용이다.


두 형제 이야기에서 금덩이가 우연히 발견되어진 부분에 대해서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실에 약간 각색이 되어질 수도 있고 미화가 되어질 수도 있으나 그 자체가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의문점보다 두 형제가 보여준 인간사랑의 실천 그 자체에 우리는 많은 관심을 가져 보아야 할 것이다. 어느 한 책자에만 소개되어진 것이 아니고 여러 곳에 기록이 되어진 것을 보면 두 형제의 아름다운 사례를 당시에도 상당히 비중있게 인식을 하고 있었다고 보아진다.

 

2006년 12월 4일 경남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에서 투금탄 전설의 주인공 이억년 선생의 묘비 정화사업 완료및 이억년 선생의 묘비 제막식 거행 장면이다.
부산일보 김길수 기자님께서 기사화 한 내용과 당시의 현장 사진을 정리해 둔다.

성주이씨 대종회에서 주관하여 성역화 작업을 하였으며 성주이씨 각 계파 문중의 회장님들을 비록하여 성주이씨 대종회 임원 모두가 참석을 하였고
이는 성주이씨 개인 문중의 차원을 넘어 아름다운 두 형제의 이야기의 주인공 묘소이기에 전국민의 정신교육의 드 높은 장이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고향의 이야기가 되기때문에

화남초등학교동창회 카페를 통하여 다시 정리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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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1면에 기사화된 내용, 김길수 기자(화남10회)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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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화남초등학교 총동창회(경남 함양 유림)
글쓴이 : 김용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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