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고향자료

[스크랩] 지리산 공개바위를 찾기까지 과정(2006년)

배꼽마당 2013. 12. 26. 18:40

1차도전 : 2006년 1월 6일 -김용규 부부
2차도전 : 2006년 1월 10일 - 김용규, 송현수, 김헐태
3차도전 : 2006년 1월 16일-김용규, 송현수, 김종숙, 이창호,
서정성(3차에서 공개바위 찾음)
*지리산커뮤니티(http://ofof.net/)홈에 공개바위 사진 게시
- 2006년 1월 21일

*지리산 아흔아홉골(http://jiri99.com/)홈에 공개바위 사진게시 - 2006년 1월 24일

*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 촬영팀 1차 공개바위 촬영
(2006년 2월 25일)

* 2006년 3월 3일 지리산 탐구 산행팀(가객, 계룡산, 시드니) 공개바위 주변 탐사 - 방송의뢰를 받고 탐색함- 정확한 고도, 주변 탐색함

* 3월 9일 SBS 촬영팀 2차 촬영-공개바위

* 3월 10일 SBS 촬영팀 3차 촬영- 지질학자, 풍수전문가 대동 현장 촬영

* 3월 16일 저녁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 공개바위 전국방송함

* 3월 16일 부산일보 석간에 공개바위 보도(김길수 기자)
* 3월 17일 부산일보 김길수 기자의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연
합뉴스 , 인터넷 뉴스 보도됨
* 3월 17일 조선일보 공개바위 보도

* 3월 19일 함양신문 공개바위 특집기사 ( 1면, 4면 )전면보도함

*KBS2 TV 생방송 세상의 아침 (3부)(2007년 5월 12일 토) 전국 방송이 됨(방송보기 3222번)

*KBS2 TV 무한지대 큐 프로그램에 전국 방송이 됨(521번 다시보기)





(함양군과 산청군 경계능선)


공개바위를 찾기 위해 벌써 세번째 도전이다. 처음엔 어렸을 때에 가 보았던 공개바위의 현황을 조망하기 위해 큰 마음을 먹고 집사람과 함께 동강마을의 뒷산 임도를 따라 올랐었다.

겨울 산은 나뭇잎이 다 떨어진 후라 길이 잘 보일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뒷골 상황을 조망했으며 공개바위까지 산행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은 후 두번째 시도는 동강 마을의 송현수, 김헐태의 젊고 싱싱한 안내를 받으며 공개바위까지 접근을 했으나 결국 못찾고 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 공개바위 탐구에 나선 송현수와 김헐태)


김밥, 소주 2병, 물을 준비하고 공개바위 2차 탐구에 3사람은 함께 나섰다. 함양군과 산청군의 군 경계지점인 뒷골의 산능선은 생각보다 길이 좋았다. 참나무 군락이 길 양 옆에 길을 에워 싸고 있었으며 그 덕분인지 다른 잡목이나 풀들이 자라지 못했는가 보다.

길은 30년 전의 상태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 산능선에서 본 함양독바위의 모습)


왼쪽은 산청군, 오른쪽은 함양군이 되는 경계능선에서 멀리 함양독바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 왔다.
오른쪽으로는 오봉천을 건너 왕산의 모습도 함께 시야에 포착이 되었다.

옛날에 공개바위 주변에서 나무를 많이 했다던 송현수는 공개바위의 위치에 대해서 자신만만 해 했다. 아무 말없이 뒤 따르는 나와 김헐태는 송현수의 안내에 그냥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다. 길을 가장 잘 아는 그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렇게 자신만만해 했던 송현수는 공개바위의 위치에 대해서 스스로 혼동상태에 빠지는 것이었다.

" 분명히 여기 어디쯤인데."

그러나 그는 이곳 저곳을 헤매며 산능선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게 아닌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송현수는 석이바위를 보고 공개바위라고 단정지었다.




( 병풍바위 위에서 송현수)


우리는 석이 바위를 탐색하기로 했다. 그곳을 공개바위라고 단정지었기 때문이다.

위로 아래로 헤매었지만 옛날에 본 다섯개의 바위가 일직선으로 쌓여진 바위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 밥을 먹고 찾아 봅시다."

송현수의 제안에 우리 일행은 그자리에서 배낭을 꺼냈다. 석이 바위는 높이가 약 20m이고 바위의 형상이 훤칠했다. 바위 위에 기이한 소나무 한그루가 아주 멋지게 자라고 있었다.




(뒷골과 오봉 사이의 산줄기 모습)


때는 1월의 말이라 얼마 전에 내린 눈은 녹지 않고 산 줄기 줄기마다 그대로 쌓여 있었다. 고지대와 저 지대의 기온 차이를 실감했다. 내린 눈이 쌓이고 또 쌓이고 지리산의 겨울 모습은 변화무쌍했다.




( 점촌마을의 서정성님)



송현수와 공개바위 찾기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되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동강 마을 회관에 가서 송현수는 공개바위 찾기 실패담을 늘어 놓자 30년 전에 수도 없이 들락거렸던 동강 마을의 여러 어른들이 탄식을 했다.

" 눈을 감고도 훤히 보이는 곳인데 그 곳을 못찾다니. 쯧쯧쯧"

세번째 도전은 6, 70대의 동강마을 김종숙, 이창호 어른들이 함께 동행을 했다. 물론 전번에 실패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송현수도 함께 동행을 했다.

공개바위 찾기 세번째 도전이었다.

예쁜 딸을 낳았다는 김헐태는 이번엔 동행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해 했던 이창호님과 김종숙님 역시 우리가 헤맸던 그 부근에서 헷갈려 했다.

" 그 참 이상하네! 분명히 이 근방이었는데........"

거의 절망적이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건대 분명히 공개바위는 아주 기이한 바위 덩이었다. 그 기이한 바위를 이번엔 꼭 찾고자 했으나 전문가들도 모른다니 이 일을 어쩌나!

체면이 다 구겨진 송현수는 마지막 선택으로 수석, 약초캐기로 이 부근을 자주 들락거린다는 점촌마을의 서정성 형님한테로 전화를 걸었다.

전파의 한계 때문에 핸드폰 소리가 오락가락한다 했다.

" 형님 공개바위를 못찾겠는데요!"

두 사람 사이에는 계속 통화중이었다. 통화를 하고 있는 중에도 주변의 지형 지물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하고 또 묻고 하다가 차를 타고 오란다.

방곡 뒤로 오르면 쉽게 오를 수 있다는 설득과 함께였다.
30분 쯤 있으니 아래 쪽에서 방곡 뒷산의 임도를 따라 한대의 짚차가 오르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잠시후에 아래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 왔다.

" 여기! "

산능선에서 아래를 보고 큰 소리로 외쳐 댔다. 우리들의 위치를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 조금 왼쪽으로. 좀더 왼쪽. 아래로!"

아래 서정성 형님으로 부터 육성 전달 메시지였다.

그 사이에 이창호 어르신께선 능선의 산 봉우리 너머로 왔다 갔다 했다. 자존심이 많이 구겨지신 모양이었다.

그렇게 장담을 했던 사실을 회복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산 전문가가 오고 있으니 그때를 기다리는 수 밖에.

" 여기다! 공개바위를 찾았다!"

조금 먼 발치에서 이창호 어르신의 상기된 목소리가 산 둔덕으로 울려 퍼졌다.

우리 모두는 그 쪽을 향해 잽싸게 나아갔다. 산죽밭이 길을 막았고 그 사이로 보이지 않는 길을 헤매며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 공개바위 가까이 있는 석이바위, 여근 바위로 보임)




( 지리산 신비의 공개바위의 위용)



" 햐!"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튀어 나왔다.

빽빽히 우거진 잡목 사이로 우람한 공개바위가 떡 버티고 서있는게 아닌가!




( 공개바위 정비를 하고 계시는 김종숙님)

전번에 10m 근방까지 접근을 했었지만 찾지 못했던 이유는 빽빽히 들어선 잡목들 때문이었다.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고 또 나중에 누군가가 이곳을 탐방한다면 우리처럼 목표물을 찾지 못할게 뻔하다.

미리 예상하고 가져간 두자루의 톱으로 우리 모두는 잡목 제거 작업에 들어갔다.




( 공개바위 정비중인 이창호님)



( 공개바위 정비중인 송현수님)




( 땀을 흘리고 있는 송현수)



( 고향의 보물을 캐고 있는 송현수)


나무잎이 우거지는 4월부터는 이대로 두었다가는 그 어느 누구도 이 곳을 찾지 못하리라는 생각에서 잡목 제거 작업에 들어갔다. 주변엔 온 천지가 잡목 숲이었다.

공개바위 주변엔 성긴 느티나무도 볼상 사납게 공개바위를 가리고 있었다. 자연 보호 위배라는 조금 미안한 생각이 함께 들었지만 수천년동안 베일에 가려져 지리산에서 잠자고 있는 보물을 캐 내는 엄청난 과업을 수행한다는 마음으로 다 같이 교대로 주변 정비를 해 나갔다.




( 연세가 많은(70대)것에 아랑곳 하지 않는 이창호어르신)




(공개바위 위의 잡동사니를 걷어내는 송현수)




( 아슬한 위험속에서의 공개바위 정비작업)




(구슬 땀을 닦으며 잠시 휴식을!)



사실 말이 정비 작업이지 두어 시간동안 주변 정리를 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톱 두개로 교대를 하여 정리를 하였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곧 여름이 되면 더 나뭇잎과 울창한 잡목 사이로 신비한 공개바위는 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질 것이다.

다시 이곳까지 발걸을음 했을 때 또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70대이신 이창호 어르신이 더 강하게 예상하셨다.

칡 넝쿨, 산죽, 다른 넝쿨로 뒤 덮이면 그 어느 누구도 이곳을 찾지 못하다고 하셨다.

그러면 영원히 지리산 속에 신비의 공개바위는 묻혀 버리리라.

고향 사랑에 대한 열정은 모두가 하나 같았다.

고된 정리 작업이었지만 그 어느 누구하나 댓가를 바라고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점심시간)




( 점심은 김밥과 컵 라면으로 간략하게 때웠다)




(일을 하고 난 후라 컵 라면 하나라도 꿀맛이었다)





( 정리 작업후 위용을 드러낸 공개바위의 모습)


드디어 공개바위 주변 정리 작업이 끝났다.

모두들 새삼스런 눈으로 공개바위의 신비스런 위용에 감탄을 한다.

" 진짜로 신기하게 생겼단 말이야!. 옛날에는 그냥 예사로 보았던 것인데 지금 보니까 더 멋있구먼!"

가장 열심히 일을 끝낸 이창호 어르신의 말씀이었다.

이것이 지리산의 최고의 명물이 되겠다는 말씀도 더 덧붙이셨다.

한국판 피사의 사탑!

무게 60톤 규모로 5개의 거대한 바위가 일직선으로 쌓여진 모습!

30도로 기울어진 모습이 더 기이하고 60도 경사진 산 비탈에 수만년동안 아무 변화 없이 그대로 서 있는 지리산 신비의 바위 하나가 이렇게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 했다.
출처 : † 즐건 ^)^
글쓴이 : 즐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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