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나들이

사근산성(함양 수동)을 찾아

배꼽마당 2021. 3. 4. 16:32

사근산성이 자리한 원평리에는 이전에 사근역원(沙斤驛院)이 있었기에 사근산성이라고 불린다. 산성은 해발 443m 연화산(蓮花山)의 능선을 돌로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연화산은 경상남도 산청에서 거창으로 향하는 3번국도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전라북도 남원으로 통하는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방면과 전라북도 장수로 통하는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방향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요충지이다. 영남과 호남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요충지에 입지하였을 뿐 아니라, 동·남·서쪽의 세 방향이 남강(南江)을 끼고 절벽을 이룬 천연의 요새로, 남해를 통해 호남의 곡창지대로 들어오는 왜구의 침입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였다.

 

산성은 1380년(우왕 6)에 영남지방을 휩쓴 왜구들에게 삼도원수 배극렴(裵克廉)과 감무 장군철(張群哲)이 혈전 끝에 함락된 뒤 조선 성종 때 보완하여 쌓았다고 한다. 그 뒤 왜구는 함양을 거쳐 단숨에 호남지방으로 진출하였다가 남원 인월역에서 이성계(李成桂)에게 격파되었다. 이 때에 박수경(朴修敬)·배언(裵彦) 두 장수와 사졸 500여 명이 이곳에서 전사하여 냇물을 온통 피로 물들였다고 전한다. 이로써 보아,이 산성은 늦어도 고려 말에는 축성되어 기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동국여지승람』에는 “사근산성은 군의 동쪽 17리, 사근역 북쪽에 있다. 둘레가 2, 796척이고 높이가 9척이며, 성 안에 못이 세 군데 있다”라고 하였으므로, 조선시대에도 산성으로 기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오래된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이곳이 신라와 백제 사이의 분쟁지역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산성을 처음 쌓은 때는 6세기 중엽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사근산성은 고대 산성의 축성 기법이 잘 남아 있는 유적이다. 특히 7세기 경 신라 산성의 축성 기법이 잘 나타나고 있어, 7세기 중반 신라와 백제의 각축전이 심하게 전개되었던 이 지역의 상황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고려시대∼조선시대에는 남해안을 통해 영남과 호남 지방에 출몰하였던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대표적인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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