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는 압록강 상류와 두만강 북쪽의 조선인 거주 지역을 일컫는 말로, 간도의 범위에 관하여는 여러 이견이 있다. 일반적으로 간도라 하면 현재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 지역을 가리키며, 두만강 북쪽인 연변 지역을 '북간도'(또는 '동간도'), 그 서쪽인 압록강 북쪽 지역을 '서간도'라 부르기도 한다.
간도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사이섬(사잇섬)으로, 그 어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그 가운데 '사잇섬'이란 말 뜻에 비추어 '간도'가 본래는 압록강과 두만강의 하중도(河中島)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가 두 강의 북안(北岸)을 가리키는 말로 그 의미가 확장·변형된 것이라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19세기 말, 조선과 청나라가 백두산정계비에 쓰여진 "토문(土門)"을 서로 달리 해석하면서 이 지역(동간도)에 대한 귀속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조선은 정계비의 위치상 '토문은 두만강과 별개의 강이다'고 주장하였고, 1903년에는 이범윤을 간도관리사로 파견하여 간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시도하기도 했다.
간도는 고대에는 북옥저와 백산말갈을 복속한 고구려, 발해의 영역이었다가 이후에는 여진족이 흩어져 살았다. 조선은 건국 초 세종대왕 집권기에 압록강과 두만강 남쪽의 여진족을 쫓아내거나 귀화시켜 4군과 6진을 설치했으나, 두 강의 북쪽으로 영토를 밀어올리지는 않았다.
1616년에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운 후 1644년에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키면서, 만주족(여진족의 후신)의 상당수가 군사들을 따라 이 지역에서 중국 본토로 옮겨갔다. 이 과정에서 본래 만주족들이 살던 지역이 공동화되자, 청은 강희제 집권기인 1677년에 '흥경 이동, 이통주 이남, 백두산·압록강·두만강 이북 지역'을 청조의 발상지라 하여 봉금지(封禁地)로 정하고 만주족이 아닌 타민족의 거주와 개간, 삼림 벌채, 인삼 채취 등을 엄금하였다.
1636년에 병자호란을 겪으며 청의 위세를 실감한 조선 역시 압록강과 두만강의 북쪽 연안에 대한 도강을 엄금하고 '월강죄'로 다스렸다.
간도는 두만강과 그 지류인 해란강, 가야하(嘎呀河), 훈춘하(琿春河) 등 여러 물길의 연안을 중심으로 한 분지와 구릉으로서 땅이 기름지고 산림이 무성한 땅이었으나, 만주족은 농경보다 유목·수렵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은 오랫동안 개간되지 못했다. 게다가 청 제국의 봉금정책으로 인해 150년 가까이 이 땅은 청조 통치자들을 위한 수렵지이자 삼(蔘) 등 약재의 채집지로 독점적으로 이용되는 상황이었다.
19세기 이후
19세기에 들어서 서슬퍼런 봉금령도 부패와 혼란으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1800년 조선은 왕권 강화를 위한 개혁정책을 추진하던 정조가 사망하면서 세도정치의 전횡과 부패로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청나라 역시 건륭제 말년에 화신의 전횡과 부패로 국정이 문란해지면서 백련교도의 난(1796년 - 1804년) 등 거듭되는 반란이 일어나 국운이 기울기 시작했다.
19세기 초부터 세도정치의 학정과 지방 수령의 수탈을 견디다 못한 조선의 농민들이 봉금령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관권(官權)이 미치지 않는 두만강 이북으로 건너가 이주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청나라가 아편전쟁(1840년 - 1842년 / 1856년 - 1860년)과 태평천국의 난(1851년 - 1864년)으로 혼란에 빠져 월강에 대한 단속이 느슨해지고 조선의 함경도 지방에서 1869년(기사대흉년), 1870년(경오대흉년) 대흉년이 들자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압록강 상류와 두만강을 건너 단속 자체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청의 봉금령은 계속되었기 때문에 그 단속을 피해 간도에서 연해주로 다시 이주하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이주민은 줄어들기는커녕 갈수록 늘어났다.
1881년에는 청나라가 '봉금령'을 폐지하였고, 1883년에 조선이 '월강금지령'을 폐지한 데 이어 1885년에 청나라가 조선인에 대한 만주 이주 금지령을 철폐하면서 조선인의 간도 유입 현상은 더욱 증가하였다.
20세기 초에도 일본 제국의 침략과 수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또는 항일 운동을 위해서 많은 조선인들이 이 곳으로 계속 이주했다. 1932년에 일본 제국은 만주에 괴뢰 국가인 만주국을 세우고 간도를 관할하는 젠다오 성(間島省, 간도성)을 설치했다. 간도는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통치 하에 들어갔고, 현재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 장백 조선족 자치현 등이 중국 행정구역으로 편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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