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의 영검이 담겨있는 비, 표충비
밀양시 무안면 홍제사 경내에 위치한 비각으로 사명당 송운대사를 일명 사명대사비라 부른다. 임진왜란 당시 의승병을 이끌어 왜군을 크게 무찌르고 일본에 전쟁포로로 끌려간 조선인 3,000명을 환국시킨 유정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즉 표충사의 동쪽인 이곳에 1742년(영조 18) 대사의 5대 법손 남붕이 경산에서 갖고 온 돌로 건립하였다. 비신과 화강암의 비개를 갖추었고, 경주석재인 빗돌은 까만 대리석이며 좌대석과 이수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뒷면에는 서산대사 휴정(休靜)과 기허(驥虛)대사의 행장(行狀)이 새겨져 있고 측면에는 표충사(表忠祠)에 대한 내력을 새겼다. 비문의 내용은 영중추부사 이의현이, 글씨는 홍문관 부제학 김진상이 쓰고 판중추부사 유척기가 전서하였다.
* 땀 흘리는 비로 유명한 표충비 *
표충비가 유명해진 이유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비신에서 땀이 흘렀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마치 구슬처럼 흐르는데 이것을 두고 이곳 사람들은 나라와 겨레를 존중하고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 하여 신성시한다. 그래서 ‘땀흘리는 표충비’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밀양 얼음골과 만어산어산불영경석과 함께 밀양의 3대 신비로 일컬어진다.
그동안 표충비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3말 1되(약 56ℓ)의 땀을 흘리기 시작해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1945년 8·15광복 3일 전, 1950년 6·25전쟁 당시 각각 3말 8되(약 68ℓ)를 흘렸다. 가장 많이 흘린 시기는 1961년 5·16 쿠데타 5일 전 5말 7되 (약 102ℓ)가 흘러내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1985년 남북고향 방문 무렵에도 흘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최근에는 2008년 FTA 소고기 협상,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2010년 천안함 침몰,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에도 땀을 흘렸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기후 변화에 따른 현상이나 비석 자체의 결로현상으로 추정만 하고 있을 뿐 정확한 과학적인 규명은 지금까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출처 : 퍼스트뉴스(http://www.firs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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