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향수
5인분쯤의 쌀을 씻어 장수 곱돌로 곱게 다듬은 돌 솥 안에 살풋 앉혔다. 곱돌을 가공해서 만든 돌 솥은 우리 집에서 가끔 이용되는 주방의 도구인데,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나, 아내의 가사 일을 조금 도와준답시고 부엌일을 거들어 볼 때에는 으레히 이 돌 솥을 사용하곤 했다.
잘 불린 쌀을 솥 안에 앉혀 놓고서는 불꽃 심지를 아주 약하게 조절하여서 익히기 시작한다. 육중한 곱돌이 천천히 데워지면서 밥이 익어 가는 시간은 약 1시간 정도가 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에만 밥짓기가 가능하다.
돌 솥밥을 제대로 지어내려고 한다면 가스렌지의 불꽃을 아주 약하게 하여서 서서히 익혀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도 그 동안의 숱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제 시간에 저녁 밥상을 차리기 위해서는 1시간 전을 계산하여 오후 6시부터 시작을 해야 7시쯤엔 식사가 가능하다는 계산 아래 일찌감치 밥 짓기를 시작하였다.
사실 아내의 일을 도와준다기보다, 무료한 시간을 메꾸기 위한 하나의 취미 활동이었다. 돌솥밥의 구수한 진가보다도 거기에서 나오는 또 하나의 부산물을 얻으려는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
바로 구수하게 만들어지는 누룽지다.
요즘 흔하게 사용되어지는 전기밥솥이나 압력 밥솥에서는 누룽지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
유아기 때에 경험한 것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상당한 비중으로 그 사람의 감각 기능이나 문화, 가치관, 정서적 사고 개념을 지배한다는 교육 이론을 되새겨 본다.
어렸을 때의 경험, 즉 자주 먹어본 음식이나 놀이들, 교우관계, 부모들의 양육 스타일, 그 지역의 문화적 전통들이나 가족 구성원들 간의 조화 등이 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고 하는데, 새끼 오리의 경우 알에서 갓 깨어난 후 가장 먼저 자기의 곁에 있는 존재가 자신의 어미로 각인이 된다는 것은 많은 실험을 통해 입증되지 않았던가?
40대 이후의 우리나라 성인의 그룹과 요즘의 어린이들 간의 음식 기호도는 확실히 다르다. 김치찌개, 된장국이 성인들의 주된 음식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요즘 아이들은 피자, 햄버거,참치 요리나 각종 인스탄트 음식들을 훨씬 더 좋아하고 있다.
예전의 시골에서는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우리 집에서도 커다란 무쇠 솥에서 땔 나무로 지어낸 그 밥을 먹고 자랐으며, 그 솥에서는 거의 매일 많은 누룽지가 저절로 만들어졌고, 간식거리가 거의 전무했던 그땐 그 누룽지가 유일한 간식거리가 되기도 했다.
요즘처럼 세련되고 더 입에 맞을 케찹 발린 소시지가 있었더라면 나의 입맛도 케찹 문화에 잘 길들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 오늘 웬일이야! 당신이 밥을 다하구! 당신 예뻐 죽겠어!"
"아빠, 누룽지는 내 것이야!"
"어허! 누룽지는 원래 아빠 몫이잖니? 잘 알면서!"
돌솥으로 밥을 할 때마다 아들놈하고 누룽지 쟁탈전이 벌어진다.
"참 당신두…. 아들하고 좀 나눠 먹으면 안 돼요?"
요즘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아들놈도 제 애비가 만들어 낸 누룽지를 어릴 때부터 자주 먹어본 탓인지 애교 있는 쟁탈전은 한 두 번이 아니다.
돌 솥은 가스 불을 끄고 나서도 제법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뜸을 들여야 제 맛이 나온다. 어느 정도 지났을 때, 불꽃을 강하게 하여 밥이 눗는 구수한 향기가 날 때까지 약 1~2분 정도 다시 뜸을 들이면 누룽지가 알맞게 만들어지는데, 이때는 돌 솥 특유의 우둔함과 쌀밥 자체의 구수함이 잘 어우러져서 은근하게 만들어지는 누룽지가 확실히 제 맛이다.
장작불을 때어서 만들어 낸 가마솥의 누룽지 맛이 된다. 시골에 가서 새로 가마솥을 사다가 밥을 지어 보는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예스러움이 그대로 재현이 된다는 것을 자주 확인해 보는 것이다.
"아빠가 밥을 할 땐 왜 그렇게나 맛있어요?"
"흐흠…! 그것은 아빠만의 특수 비결이지! 흐흐."
"그럼 이제부터 아빠보고 매일 밥하시라고 그래라!"
부부 사이인데도 질투다.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급 쌀에다가 압력 밥솥을 사용해서 지어진 밥이 찰기가 있고 맛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돌 솥을 사용해서 알맞게 뜸을 들여 지어낸 것은, 그 찰기에다가 구수함이 곁들여져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독특한 맛이 창조되어진다.
밥을 퍼낸 다음 약간의 시간을 두면 쉽게 누룽지가 일어난다. 알맞게 건조가 되고 약간 식었을 때 누룽지의 제 맛이 나는 것이다.
문제는 그 돌 솥을 그냥 놔두면 아주 중요한 사실을 잃어버리게 된다. 밥을 지어내고, 누룽지를 만들어내고, 그 다음엔 토속적이면서 가장 한국적인 누룽지 숭늉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보통 생각으로는 달궈진 돌 솥에 그냥 물만 부어 놓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게 하면 숭늉의 구수한 맛을 우려낼 수가 없기 때문에 여기에는 또 하나의 실험적인 기질을 발휘해야 제 맛을 만들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수함이 배여 있는 돌 솥 안에 약간의 누룽지를 그대로 두고 물을 부어야 한다.
펄펄 끓을 때까지 제법 오랫동안 가열을 하고 난 다음에 약간 식혔다가 맛을 보면 진짜 한국적인 숭늉의 맛을 찾아낼 수 있는데, 돌 솥 하나에다가 저녁 식사 문제를 해결하고 두가지의 덤을 건질 수 있어서 참 좋다. 이 그럴듯한 취미 활동의 배경 속에는 어릴 때의 아궁이 솥에서 만들어지는 누룽지에 대한 추억과 향수 때문인지도 모른다.
길을 지나다 보면 음식점 간판 중의 몇 개가 '꽁보리밥 집', '헛 제사밥', '옛날 자장면' 이란 이름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 눈에 띄이곤 한다. 유치한 식당 같은데도 손님들이 제법 북적인다. 맛에 대한 향수 때문일 것이다.
따끈한 순두부, 맵사하면서 얼큰한 그러면서 우거지에 잘 어우러진 추어탕, 매콤하게 양념을 한 장어구이, 연하고 부드러운 소 등심구이, 참기름을 발라 갓 구워낸 김, 아삭아삭하게 조리한 죽순 무침, 역시 매콤하면서도 상큼하게 향내나는 더덕구이, 살이 통통하게 올라 알맞게 건조된 굴비들, 고추장과 된장을 약간씩 풀어 갖은 양념과 곁들인 민물 매운탕- 이런 말들을 나열하다 보면 군침을 삼키는 세대들은 분명 기성세대들이 확실하다. 아이들한테 이런 말들을 나열해 봤자 시큰둥한 반응이 보일 게 뻔하다.
직업상 요즘 세대의 아이들과 이십 몇 년간 생활에 오는 동안 분명하게 이런 말들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환경적, 정서적 세대간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옛날처럼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구식으로 밥을 지어 먹자거나, 요즘 것은 형편없는 것이니 과거로의 회귀를 부르짖는다거나 하는 것도 이론주의자들의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단지 가끔씩은 사정이 허락되는 범위 내에서 추억을 그리워하고 기억에서 아껴 두었다가 과거를 챙겨 보는 재미도 생활의 한 묘미가 아닐까!
2050년쯤엔 길거리의 모퉁이 식당에선 골동품 같은 이름으로 이런 이름들을 신기해하지 않을까? '케찹 바른 소시지 집', '쇠고기 햄버거 집', '켄터키 양념통닭', '피자집'. 이런 간판들은 그때는 확실히 고전적인 이름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의 아이들은 60대가 될 것이고 또 다른 새 문화에 밀려 어릴 때 많이 들 먹어 보았던 음식들의 문화에 대한 그리움을 가질 것이고, 맛에 대한 강한 향수를 느낄 만도 하리라.
하루 종일 집안에 틀어박혀서 TV하고 씨름을 하면서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보다 누룽지를 맛볼 수 있는 이 시간이 훨씬 좋았다. 조용한 오후에 조금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마누라한테 제법 점수까지 땄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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