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 좋아 했던 것
김용규
1975년 2월 6일 수요일 흐림
난 겨울이 좋다.
눈이 오는 날은 더더욱 좋고 추운 날에 군불을 땐 아랫목 구둘막에 포근히 이불을 펴 놓고 그 속에 발을 데우는 것이 참 좋다.
우리 동네 뒷동산이 좋고 양지 쪽 쌍 묘 근방에서 피어나는 꼬부랑 할미 꽃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뒷 동산에서 피는 꽃 하나가 진달래인데 연분홍빛 꽃이 하나도 거짓이 없어서 참 꽃이라고 불리어 졌는지 모른다. 그 진달래 꽃을 구경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뒤 따라 피는 철쭉 꽃은 정열적인 색깔로 봄을 만드는데 그 철 쭉 꽃도 참 좋아한다.
철 쭉이 필 때를 조금 지나면 뒷 동산에서는 뻐꾸기가 울어 댄다. 뻐꾸기 소리를 들으면 내가 좋아 하는 봄을 살그머니 밀어 내는 것 같아 서글퍼지기도 한다.
우리 동네 정자 나무 아래에서 다섯개 공개놀이(공기놀이)를 하는 것이 그렇게나 좋고 추석 때 그 정자 나무에 그네를 매어 타 보는 것도 참 좋아한다.
뒷동산의 이곳 저곳을 헤매고 다니며 억새 꽃을 꺾어 보는 재미를 생각 해 보는 것도 참 좋아한다.
새벽 이슬을 맞으며 밤나무 아래에 가서 밤을 줍는 것과 샛 노란것, 붉으스레 한것, 주홍빛으로 물든 단풍잎을 책 갈피에 끼워 넣는 것도 참 좋다.
보리 갈이를 한 늦가을의 들판위로 갈가마귀 떼가 갈갈거리며 지나갈 때면 괜히 고독해지고 무엇인가 자꾸 그리워 지는 것을 보면 또 그런 분위기가 자아내는 것들을 좋아 했는가 보다.
친척들이 모두 모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제삿날이 좋다. 먹을 것이 없었던 때에 제삿날이 되면 맛있는 떡이랑 과일이랑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멋 모르는 시절부터 나의 작은 즐거움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훤히 둟린 마을 앞길로 달리는 리어카를 따르기가 무엇보다 좋다. 우리 집엔 아직 리어카가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뒷집에 있는 리어카가 한번 외출을 할 때 난 꼭 그 리어카 뒤를 따랐다. 짐을 실어다 놓고 올 때면 내가 앞에서 니어카를 끌고 사람들을 태워주는 그 재미가 참 좋다.
올 봄부터 이샛들에 농로가 나면 우리집에서도 리어카 한대를 산다고 한다.
그렇지만 좋아 하는 일 하나가 금지 당해서 무엇보다 아쉽기도 하다. 정월 대 보름날 동네 앞에서 달집 태우기를 참 좋아 하는데 요즘은 소나무를 베어 내는 것은 절대 안 된다기에 달집을 못 짓는다는 것이다.
18가구가 사는 우리 동네 아이들은 모두 산에 올라가서 소나무를 꺾어와서 달집을 짓고 그것을 태우는 재미는 모두 좋아 했는데 , 달집을 태울 때 뿌우연 연기가 뭉실뭉실 보름달을 향해 치솟아 오를 때 나의 마음도 함께 하늘로 날아 올랐고 연기와 함께 쌓였던 그 무엇이 함께 타 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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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기는 고등학교 2학년 말 때 쓴 것입니다. 50이 다 되어 가는 이 싯점에서 고 3인 아들 보다도 어렸던 그 시절의 내가 어 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가 되새김질 해 보니 재미가 있네요. 요즘의 분위기와 아주 다른 것도 있고 , 지금의 내 기호도와 꼭 같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1975년도엔 이샛들에 농로가 완공되지 않았다는 기록도 함께 발견 되어지고, 자가용이 너무나 흔한 지금과 아주 대조적으로 니어카가 당시의 유일한 운반 도구로 각광 받았다는 것도 함께 발견이 되어 집니다. 우습지요.
1975년 전후를 해서 입산금지, 산림 보호, 자연 보호 분위기의 초창기였던 것 같군요. 산에 나무를 함부로 베어내지 못하게 했던 것과 게음터 마을의 가구수가 18세대라는 것도 함께 발견되어집니다.
당시와 지금은 참 많이 변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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