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억이야기

나무꾼이 되었던 시절

배꼽마당 2012. 11. 8. 14:06

나무꾼이 되었던 시절

 

2007년 7월 22일 오전 12:30

 

80년대를 깃점으로 시골에서도 산에 가서 나무를 하는 일이 드물었다. 나무를 때는 아궁이 문화에서 석유

 

보일러로 대체가 되었고 겨울 내내 땔감용으로 산에 가서 나무를 하는 일이 퍽 드물었다.

그 이전에는 누구네 집을 막론하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와야 했고 나무는 살아가는데 필수 요소였다.

시골 출신이라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하던 기억이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으리라.


집집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 날랐기 때문에 가까운 산에서 나무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렸웠다. 가까운 

 

 산은 민둥산이 되어갔고 더 많은 나무를 하기 위해서는 더 높게 더 멀리 가서 해 와야만 했다.




가까이에서 나무를 손쉽게 하는 방법은 소나무 낙엽을 긁어 모으는 방법이었는데 이때는 갈쿠리가 필요했다.



산길 오솔길로 올라서 나무를 운반하는 수단은 유일하게 지게였으며 지게는 사람의 키에 알맞게 맞춰져

 

사용하는 사람마다 길이가 조금씩 달랐다.




소나무 잎이 떨어진 것을 긁어 모우면 땔감으로 그만이었는데 그것을 엄천골에서는 갈비라고 했다. 요즘의

 

소갈비를 연상하겠지만 소갈비와는 다른 나무갈비였던 것이다.




바싹 마른 소나무 잎은 아궁이의 가마솥의 땔감으로 아주 이용하기가 좋았다. 부드럽게 화력이 아주 좋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군불용으로는 적당치 않았다.



 

거친 나무를 할 땐 가운데 한줄묶음만 놓으면 되지만 갈퀴나무 할 땐 두줄로 묶어야 안전하게 잘 나뭇짐을

 

묶을 수 있었으며 아랫부분에는 솔가지를 걸쳐 놓아야만 나뭇단을 단단하게 묶여졌다.




더 큰 나무짐을 묶으려 한다면 새끼줄을 세줄로 해야 했다.



(나무짐을 묶는 장면)






이런 모습들도 이제는 아득한 기억속에만 존재하고 있을 뿐, 시골에서도 좀체 구경을 하기가 쉽지 않은 모습이다.

옛날에는 나무를 하는 그 자체가 생존 수단이었지만 이제는 아득한 추억의 한 페이지일 뿐이다.

'◆나의 추억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설날의 노천탕   (0) 2012.11.08
엄천강에서 고기잡기   (0) 2012.11.08
1973년 8월 1일 수요일 맑음   (0) 2012.11.08
1974년 8월 15일 목요일   (0) 2012.11.08
1973년 8월 7일 화요일 맑음   (0) 2012.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