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흔적들

좌이산, 소가야의 흔적(고성)

배꼽마당 2017. 1. 17. 11:21

경남 고성의 좌이산 정상엔 봉수대 흔적이 뚜렷하다. 멀리 남해 조망이 뚜렷하고 앞쪽엔 사량섬이 잘 보인다.

죄이산 봉수대는 1994년 7월 4일 경상남도기념물 제138호로 지정되었다. 고성읍으로부터 약 30㎞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좌이산 해발고도

 392m의 산정에 자리잡고 있으며 전체 면적은 240.5㎡이다. 둘레가 73m, 높이 최고 2.2m, 최저 1.6m이며 두께는 30~50㎝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석축은 36m이고 둥근 석축 안에 화덕 자리와 막사 자리가 있다.
조선 초기에 설치되었으며 남해안에 위치한 간봉(間烽)의 하나로서 거제  가라산 봉수대(경남기념물 147)에서 시작하여 통영 미륵산, 통영

우산, 통영 사량진 직봉(直烽), 진주 각산으로 연결되는 중간 지점에 있다. 인접한 소을비포 진영의 변방으로도 활용되었다. 당시 봉수대에는

 오장(伍長) 2명과 봉수군(烽燧軍) 10여 명이 교대로 근무하였다.
봉수는 고대부터 중요한 통신 수단의 하나로서 주로 높은 봉우리에서 횃불이나 연기 등으로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이나 해당 진영에

전달하여 적의 침략을 초기에 막아내는 등 군사 목적으로 설치한 것이다. 이 봉수는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백제

 온조왕과 가락국 수로왕 때의 관련 기록이 수록되어 있어 삼국시대 초엽부터 있어온 것으로 짐작되나 확실한 것은 고려 의종 이후부터이다
































(고성읍에 위치한 7공주 무덤)


소가야(小伽倻)는 여섯개의 가야 가운데 신라 유리왕 19년(42년)에 경상남도 고성군 부근에 세워진 나라이다. 김수로왕과 함께 구지봉에서 태어난

 6명의 동자 중에서 막내인 김말로가 건국하였다. 고성군 일대를 중심으로 사천군에서 통영시 일대에 유적이 발굴되었다.





애초에 소가야와 함께 6가야의 각국명칭인 "某가야"라는 명칭은 신라말에서 고려시대의 가야부흥세력을 이끌던 호족들의 지역에 고려 태조가 OO가야라는

 명칭을 부여하면서 옛 가야시대의 이름인양 와전된 것으로 실제의 가야제국과는 전혀 무관한 이름들이라 한다. 실제로 가야연맹은 6개국이 아니라 10~13개

이상의 나라들의 집합체였다.[1] 고성군 일대에 있던 나라의 이름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사포국(古史浦國)혹은 고자국(古自國)으로,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변한조에는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