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억이야기

라디오 속의 세상

배꼽마당 2016. 4. 26. 11:17

라디오속의 세상

 


 

참 어렸을 때에 10세대가 조금 넘는 작은 마을이었던 기암터가 이 세상의 전부인줄 알았다.

마지막 빨치산인 정순덕과 이홍이 이은조가가 뒷동산인 지리산 어귀를 이리저리 활개를 치고 다니던 시절이니 참 오래전의 일이 된다.

지리산 아래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멀리 왕산의 모습과 법화산이 보이는 골짜기만이 좀 더 큰 세계라고만 여기면서 자랐었다.

바깥 세계를 전혀 모르고 바깥 문화와의 접촉이 전혀 없었고 사회화가 되지 못한 어린 나이였기에 산골의 작은 마을에서 보고 자라는 환경이 그것뿐이라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나 뿐 아니라 60년대 초만 하더라도 지리산 아래의 오지 마을로 통했던 지리산 엄천골 사람들 대부분이 외지 문화와는 단절된 삶이었다고 결론지어 본다.

 

당시에는 문정까지 신작로라는 이름으로 도로가 개설되어 있었으나 버스는 다니지 않았고 바깥나들이를 할 때는 반드시 걸어 다니는 게 상례였으며 산청군 금서면의 화계 장엘 갈 때도, 함양읍까지 갈 때도 반드시 걸어 다녀야 했으며 무엇을 타고 간다는 개념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환경 속에서 신문화의 중심에는 학교 선생님이셨던 우리 동네의 김종률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집에는 우리의 놀이대장이었던 영태형이 있었고 우리는 영태형 집 주변에서 놀이 활동을 참 많이 했으며 주생활 무대가 영태형 집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이해를 해 보려고 해도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는 의문 때문에 몇 년 동안 무척 고민을 했던 문제 하나가 뇌리를 감싸 돌고 있었는데 그것은 영태형 집에만 존재하는 라디오라는 물건이었다. 길쭉하고 세련되었으면서도 걸레질이 잘 되어 항상 깨끗한 상태로 먼지하나 묻어 있지 않은 라디오의 겉모습이 신기하기도 했거니와 그 속에서 전혀 나타나지도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자꾸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 신기한 네모 상자 속에서 노래 소리도 흘러나오고,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는 소리도 자주 들리곤 했다.

 

며칠 있다가 영태형 집에 가서 그 라디오를 유심히 주시해 보아도 역시 의문점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그 자체로 머리속에 계속 맴돌고 있었다.

 

' 희한하데이! 저속에는 아주 작은 사람들만 사는 세상일끼다. '

 

라디오 속에 사는 사람들의 크기를 대략 짐작 해 보았다. 라디오에서는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으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게 분명한데 그 작은 통속에서 살고 있다면 아주 작은 사람일 수 밖에 없다고 결론을 지어 보며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몸체의 크기를 나름 분석해 보기로 했다. 노래 소리도 들리고 여태까지 네모 통속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결론과 함께 라디오 속의 사람 숫자대로라면 우리 동네보다 규모가 커야 했는데 그것이 굉장히 의문점으로 다가온 것이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저 작은 통속에서 살 수 있을까?’

 

작은 통속이라도 사람이 살고 있다면 집도 필요할 것이고, 걸어 다니는 길도 필요할 것이고, 잠을 자는 방도 필요할 것이고 밥도 지어 먹어야 할 것이다.

마당에 뒹굴어 다니는 콩 하나를 주워서 대략 짐작해 보았다. 아니었다. 라디오 속에 사는 사람은 콩보다 더 작아야 했다.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마당도 있어야 했고 농사를 짓는 논도 있어야만 했다. 그러자면 사람들의 크기가 콩보다 더 작아야 했다. 적어도 라디오 속의 사람들은 개미 정도 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해 보았다.

아주 작은 체구를 가진 라디오속의 세계가 있다고 해도 의문점이 더해져 갔다.

통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밥을 해 먹어야 할 것이고 그러자면 통 속에서 나무로 불을 지펴야 할 것이며, 분명한 것은 저 속에서 매일 연기가 피어올라야 하는데 평소에 그런 낌새는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은 밥 짓는 때에만 영태 형네 집에 있지 않아서 그랬다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언젠가 엄마를 따라 영태형 집에 가면 꼭 그 부분을 유심히 살펴 볼 것이라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라디오 소국의 사람들이 저녁밥을 지을 때 피어 오른 연기의 그을음은 영태형의 엄마께서 걸레로 계속 청소를 해서 라디오 바깥 부분이 깨끗해져 있는 거야!’

 

며칠 후 여느 때처럼 동네 친구들이랑 숨바꼭질을 하다가 우연히 저녁밥을 지을 때 라디오에서 연기가 나는 장면을 관찰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 숨바꼭질을 하는 중간중간에 방문이 열려있는 큰 방을 유심히 두리번거렸고 라디오에 시선의 촛점을 잡았다. 문제는 통속에서 연기가 전혀 피어오르지 않았다. 영태형네 용순이 고모가 예쁘게 수를 놓은 보자기가 라디오 위를 장식하고 있었으며 평상시와 꼭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저녁밥 때를 알리는 엄마들의 부름 소리에 우리들의 숨바꼭질은 끝이 났고 라디오 세계의 의문점 때문에 나날이 고민이 더해져 갔다.

 

' 라디오 속에 사는 사람들은 왜 밥을 해먹지 않지?'

 

저녁을 먹다가 그런 의문에 대해서 드디어 엄마께 해답을 얻기로 해 보았다.

 

엄마는 웃기만 하셨다.

 

" 나도 잘 모르겠는데~"

 

라디오속의 세상에 대한 이것저것에 관한 의문점들이 저절로 풀린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 새로 결혼을 한 임위생 형님이 우리 집 바로 앞에 새 집을 짓고 영태형 라디오 보다 더 큰 라디오가 등장하고 나서부터였다.

지금은 지리산 둘레길 4(금계-동강), 5구간(동강-수철)의 중심 마을(동강마을)이 되어 외지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이 되었지만 아날로그 시절에 라디오 속에서 작은 사람들이 참 열심히 살고 있다고 굳게 믿고 그 세계를 상상해 본 그런 시절이 분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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