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현장에 종사하는 거제 초등 CEO에서 현장 연수의 하나로 역사의 현장 탐방 주제로 시행되었다. 조선시대 대 유학자들을 배출하고 등용의 기회가 되었던
과거 제도에 응시하는 영남의 유생들이 반드시 지나야 했던 고갯길 문경새재와 신립장군의 애국정신이 깃든 탄금대 탐방이 그것이다.
문경새재는 영남과 기호 지방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옛길이었다.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넘나들던 길로, 문경(聞慶)이라는
이름과 옛 지명인 문희(聞喜)에서 드러나듯 ‘경사로운 소식,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의미도 과거길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연유로
문경새재는 급제를 바라는 많은 선비들이 좋아했던 고갯길이었다. 그래서 영남은 물론 호남의 선비들까지 굳이 먼 길을 돌아 이 길을 택하기도 했다.
《택리지》에도 “조선 선비의 반이 영남에서 배출되었다”라는 구절이 있음을 볼 때 참으로 수많은 선비와 길손들이 이곳을 왕래하였음을 헤아릴 수 있다.
탄금대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 신라 진흥왕 때 악성(樂聖)
우륵(于勒)이 가야금을 탄주하던 곳이라 전한다. 본래 대문산이라 부르던 작은 산으로 밑으로 남한강과 접하면서도 기암절벽에 송림이 우거져서
경치가 좋은 곳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보면, 우륵은 가실왕(嘉悉王) 당시의 가야 사람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귀화하였다. 진흥왕이 기뻐하여 우륵을 충주에 거주케 하고는 신라 청년 중에서 법지(法知)·계고 (階古)·만덕(萬德)을 뽑아보내
악(樂)을 배우게 하였다. 우륵은 이들의 능력을 헤아려 각기 춤과 노래와 가야금을 가르쳤다 한다. 그는 이곳을 우거지(寓居地)로 삼고 풍치를
상미하며 산상대석(山上臺石)에 앉아 가야금을 타니, 그 미묘한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로 연유하여 이곳을 탄금대라
불렀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申砬)이 8,000여명의 군졸을 거느리고 와 배수진을 치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군대를 맞아 격전을 한 전적지이기도 하다. 신립은 전세가 불리하여 패하게 되자 천추의 한을 품고 강에 투신
자살하였다.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에 열두대라고 하는 100척이나 되는 절벽이 있는데 신립이 전시에 12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시어
쏘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였다고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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