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고향에서 시제 지내던 날

배꼽마당 2019. 11. 18. 11:20

광산김씨의 시조는 신라 왕자공(휘 흥광)


신라말에 장차 난(亂)이 있을 것을 예견하시고 세상이 어지러움을 한탄하시며, 금성(現, 경주)을 떠나 무진주

서일동(現,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은거하시어 학문을 닦으시고 예(禮)를 강(講) 하시었다.

 

그 후 려조(麗朝)에 누대(累代)에 걸쳐 평장사(平章事/ 現, 부총리급)가 배출되어 서일동을 사람들이 평장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광산김씨 역사는 평장동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역사는 천년이 넘고, 지금의 후손이 백만을 헤아린다. 

장구한 역사의 변천속에서 영욕과 거듭하면서 명문화벌로 성장 발전 하였다.

   겨레의 스승을 제사하는 문묘배향 18현 중 광산김씨 조상님이 두 분이나 되고, 또한  부자 명현으로 유명하다.

   종묘에 배향된 보익공신이 세 분이고, 전국 쉰한개의 서원에서 여든두 분의 조상이  배향을 받고 있다.

 

양간공파에 소파인 목사공파 용자 항렬이라 윗대 할아버지께서는 평장동에서 논산시 연산, 그 다음엔 전북 장수군,

그 다음엔 남원 주천, 고조할아버지께서는 지리산 아래인 함양 휴천면으로 맥의 흐름이 연결되어진다.  

그 후손들이 한곳에 모여 매년 시제를 지내고 있다. 제각을 아직 건립하지 못하여 고향 옛 집에서 제를 지내고 있으며 조만간에 

제각을 건립하여 후손들의 중심체를 만들 예정이다. 



논산시 연산면 목사공파 선조 묘소 정경 : http://blog.daum.net/yk8968/549


광산김의 성지 담양 평장동을 찾아 : http://blog.daum.net/yk8968/865